[채송무기자] 이기택 전 민주당 총재가 20일 향년 80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이 전 총재는 4.19 세대 대표적 정치인으로 7선 의원 출신이다. 제3공화국 이후부터 야당 생활을 해오면서 신민당 사무총장과 부총재, 통일민주당 부총재, 옛 민주당 총재, 한나라당 총재 권한 대행, 민주국민당 최고위원, 새천년민주당 중앙선대위 상임고문을 지냈다.
고인의 빈소는 강남 성모병원이고 장지는 4.19 국립묘지다. 고인은 우리 정치사에 적지 않은 발자취를 남겼다.
1967년 신민당 소속의 전국구로 7대 국회의원에 당선된 이후 부산에서 8,9,10대 국회의원을 역임하면서 야당 중진이 됐다. 3김 시대에도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 등 정치 거목과 별도의 계보를 갖는 독자적 정치인으로 평가되고 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신군부 집권 이후에는 정치 규제에 묶여 11대 국회에서는 출마하지 못했지만 이후 1985년 12대 총선에서는 부산 해운대에 출마해 당선됐다. 이후 신민당 부총재와 통일민주당 부총재를 지냈다.
1990년 3당 합당에서 참여를 거부해 김영삼 전 대통령과 결별해 당시 노무현 전 대통령, 김정일 의원, 무소속인 홍사덕·이철 의원 등과 함께 민주당을 창당하고 총재에 선출됐다. 이후 1991년 김대중 전 대통령의 신민주연합당과 합당해 민주당을 창당하고 공동대표가 됐다. 1992년 14대 총선에서는 전국구로 당선됐다.
1992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대통령 선거에서 패배하고 정계를 은퇴한 이후 야당 총수로 정치적 전성기를 누렸지만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정치 복귀 이후 동교동계 의원이 민주당을 탈당해 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당하면서 이에 배제됐다.
이후 1996년 15대 총선에서 민주당 소속으로 부산 해운대구에 출마했지만 낙선했고 1997년 고향인 포항 보궐선거에서도 낙선됐다. 15대 총선에서 대통령 후보로 영입했던 조순 전 서울시장이 신한국당의 이회창 총재와 합당하면서 한나라당 정치인으로의 길을 걷게 됐다.
이후 2000년 16대 총선에서 이회창 전 총재의 공천 쇄신에서 물갈이 대상으로 공천에서 탈락한 이후 김윤환·김광일 의원, 재야 인사인 장기표 씨 등과 민주국민당을 창당해 부산 연제구에 다시 출마했지만 역시 낙선했다.
2002년 대선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을 지지해 새천년민주당 중앙선거대책위원회 상임고문을 지냈지만, 이후 참여정부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보였고 2007년에는 한나라당 이명박 전 대통령을 지지했다.
--comment--
첫 번째 댓글을 작성해 보세요.
댓글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