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미숙기자] 박근혜 당선자의 리더십은 '위기에 강하다'는 말로 요약된다. 대통령의 딸로서 청와대에 입성했을 때부터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으로서 청와대 문을 다시 열 때까지 박 당선자는 숱한 역경을 헤쳐왔다.
박 당선자는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으로 '부모님을 흉탄에 잃었을 때'를 꼽는다.
1974년 프랑스 유학 중 어머니 육영수 여사 시해 소식을 접한 박 당선자는 당시 일기에 "지금 나의 가장 큰 의무, 그것은 아버지로 하여금, 국민으로 하여금 아버지가 외롭지 않으시다는 것을 보여드리는 것이다. 소탈한 생활, 한 인간으로서의 나의 꿈, 이 모든 것을 집어던지기로 했다"(1974년 11월 10일)고 적었다.
보통의 20대 여성이라면 무너지고도 남았을 어머니의 죽음 앞에서도 박 당선자는 아버지와 국민, 대한민국을 생각하며 자신을 단련시켰다.
1979년 10월27일, 아버지인 고(故) 박정희 전 대통령이 흉탄에 숨을 거뒀을 때 박 당선자가 "전방에는 이상이 없습니까"라고 물었다는 사실은 25년여가 흐른 지금도 회자된다.
'정치인 박근혜'의 위기 극복 능력은 두 차례 위기에 처한 당을 극적으로 회생시킨 데서 드러난다.
지난 2002년 당시 한나라당이 '차떼기 수사'에 노무현 대통령 탄핵 역풍을 맞았을 때 당 대표를 맡아 구원투수로 나섰던 박 당선자는 '천막당사'로 침몰하는 한나라당을 구해냈다. 이후 각종 재·보선에서 승리하면서 '선거의 여왕'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특히 2006년 지방선거 때에는 선거유세 도중 오른쪽 뺨이 커터칼에 의해 40센티 가량 베이는 '테러'를 당해 대수술을 받고 난 뒤 "대전은요"라고 선거 판세를 물은 일화에서도 박 당선자의 리더십이 드러난다.
2011년 한나라당이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패하고 이명박 대통령 측근 인사들이 줄지어 구속되고 당내 비리가 드러나는 등 또 한 번 위기를 맞자 박근혜가 다시 등장했다.
박 당선자는 당명·정강정책을 변경하는 대수술을 감행했고, '박근혜 선장'의 지휘 하에 새롭게 출발한 새누리당은 당초 우려와는 달리 2012년 4월19일 총선에서 원내 과반 의석을 차지했다.
대선 후보로서 박근혜는 '준비된 대통령론'을 전면에 내세웠다. 어머니를 대신한 퍼스트레이디로서의 국정 경험, 당 대표로 당을 두 번이나 위기에서 구해낸 경륜을 부각시키며 눈앞에 닥친 글로별 경제위기를 극복할 적임자임을 강조했다.
이 같은 전략은 유권자들의 마음을 움직였고, '대통령의 딸 박근혜'를 18대 대통령 자리에 앉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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