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o? 시리즈 <스티브 잡스>(다산북스)’가 소개하고 있는 ‘프레젠테이션의 귀재’ 스티브 잡스는 죽음의 문턱에서도 확신에 찬 말투와 표정을 통해 전 세계인에게 열정을 전파했다. 그의 죽음 이후 전 세계 팬들은 “그의 탁월함과 열정, 에너지는 혁신의 원천이었다. 우리는 돌려받지 못할 무엇인가를 잃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전 세계인들의 삶을 바꿔 놓을 너무도 많은 제품들을 남기고 갔다”고 고인을 애도했다.
그는 21살 때 아버지의 차고에서 놀라운 사과를 만들어 냈다. 그리고 30살에 자신이 만든 회사에서 쫓겨났다.
사실 혁신과 창조의 대명사로 알려진 스티브 잡스지만 그의 면면을 자세히 살펴보면 성공보다는 실패의 아이콘이라고 표현하는 게 더 적당할 듯하다. 사생아로 태어나 입양되었고 왕따로 유명했고, 대학을 중도 포기했으며, 애플로부터 버림받는 등 한마디로 인생의 쓰디 쓴 맛을 봤다. 그 뿐인가. 그저 외양에만 치중했다는 비판을 받았던 야심작 매킨토시와 넥스트(NeXT)라는 회사를 설립한 뒤 선보인 PC 역시 외면을 받으며 잦은 실패를 경험했고 암에 걸려 수술도 받았다. 그의 나이 예순도 되지 않아 인생을 마감했다.
그러나 그의 실패의 역사에는 실수를 인정하고 또 다른 혁신을 추진하려 했던 그의 노력들이 촘촘하게 박혀있다. 끊임없이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이기고 떠오르는 영감을 실현시키려는 그의 용기와 열정의 역사였다.
“계속 갈망하라. 늘 우직하게(stay hungry. stay foolish).”
스티브 잡스가 남긴 최고의 명언으로 손꼽히는 말이다. 무모할 정도로 집요하게 IT혁명을 일으키고자 했던 잡스. 강력한 지도자인 동시에 항복할 줄 모르는 징기즈칸 같은 전사였다.
최근 10년 동안 사후 이렇게 조망받는 인물은 없었다. 전 세계가 진심으로 애도하고 슬퍼하며 아쉬워 하는 인물은 그가 처음인 듯 하다. 미국인이지만 그는 단순한 미국인 이상으로 기억됐다. 지구촌 최고의 창의적 인물이며 영향력이 센 명사이기도 했다.
문명의 패러다임을 바꾼 것으로 본다면 스티브 잡스는 전기를 발명한 에디슨에 비유되기도 한다. 스물다섯 나이에 거부가 되어 타임지 표지에 오르기도 했다. 그는 단순한 엔지니어가 되기를 항상 거부했다.
“애플 컴퓨터의 핵심은 나의 상상력이야. 기술이 아니라고”(who?시리즈 스티브 잡스 113쪽)
이 말처럼 잡스는 기술은 배우기만 하면 누구나 가질 수 있지만 상상력은 아니라는 자부심을 가졌던 것이다. 단순한 부자로도 뛰어난 엔지니어로도 남기를 거부했던 스티브 잡스의 진정한 꿈은 문명을 바꾸는 것이었다.
그는 그의 포부대로 매킨토시에 머무르지 않고 창조 아티스트로서 역할에 매진했다. 아이팟, 아이폰, 아이패드, 클라우드, 아이폰4s까지 IT의 역사를 바꿀만한 엄청난 기기들을 선보였다.
미국 팔로알토에 있는 그의 저택은 애도의 조화들이 둘러싸 있다. 잡스는 결국 지병인 췌장암으로 사망했다. 그를 아쉬워 하는 사람들은 암 선고를 받았을 때 은퇴했다면 좀 더 오래 살지 않았을까하는 바람을 보였다. 하지만 잡스는 암 판정을 받고 8년을 더 일하면서 21세기 인류가 걸어야 할 길을 제시했다.
단돈 연봉 1달러로 그가 보여준 프레젠테이션 신화는 이제 더 이상 볼 수 없게 됐다. 하지만 디지털 시대가 계속되는 한 잡스라는 이름은 영원히 회자될 것이다.
/좋은 책의 발견 북스커버리 cbci 서하나 jindalae@cb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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