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분기 2만6천여대로 사상 최대 판매량을 보였던 국내 x86 서버 시장 규모가 3분기에는 3천여대가 줄어든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
업계에서 비수기로 꼽는 7, 8월이 포함돼 있기 때문에 당연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속내를 들여다 보면 뭔가 이상하다. 3분기 시장 축소의 이유가 비수기 때문이 아니라는 사실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당장 시장 1위 한국HP만 하더라도 이 회사의 7월과 8월 출하량은 업계에서 말하는 비수기가 끝난 9월에 비해 오히려 더 많았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
한국HP부터 보자. 한국IBM이 지난해 4분기부터 무서운 기세로 쫓아왔다. IBM은 심심하면 1위하겠다고 공격적인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HP는 좌시해선 안되겠다는 생각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겠다고 기자들에게 대놓고 말했다.
팔겠다는 의지는 가상하나 사겠다는 사람은 쉽게 나타나지 않는 법이다. 그런데 한국HP의 실적은 큰소리 친만큼 쭉쭉 올라갔다.
이같은 '마술'의 해답은 유통 채널로의 '밀어내기'였다. 밀어내기란 제조 업체가 자사 유통 채널들에게 일단 제품을 받아두도록 하는 것이다. 소비자에게 판매되지 않아도 채널에 밀어낸 수치도 출하실적에 잡히기 때문이다.
다시말해 HP의 경우 7월과 8월에 유통 채널들에 많이 밀어냈고, 9월에는 늘어난 재고에 부담을 느낀 채널들이 더이상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이다. 때문에 HP의 출하실적으로만 보면 비수기인 7, 8월에는 늘어나고 비수기가 끝난 9월에 줄어드는 현상이 생긴 것이다.
1등 HP를 쫓겠다고 정신없이 뛰어온 한국IBM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한국HP 관계자는 "한국IBM의 3분기 실적이 좋지 않았지만 유통 채널을 2배 가까이 늘렸으니 오히려 파워는 막강해졌다. 골치아픈 상대가 부활했다"고 표현했다. 결국 한국IBM의 추격 방법도 유통 채널을 통한 밀어내기에 기댄 셈이다.
한국IBM 관계자는 "보름에 한번씩 재고조사를 하기 때문에 밀어내기가 있을 수도 없고 재고가 쌓일 수도 없다"고 강조한다. IBM 뿐만 아니라 '밀어내기'라는 단어에 대해 서버 업체들은 모두 정색을 하고 손사래를 친다.
하지만 "x86 제품은 대부분 유통 제품", "x86 시장은 유통이 좌우"라는 말을 끊임없이 하는 업체들이 밀어내기를 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은 얕은 거짓말이다.
x86 서버 시장의 다크호스로 떠오른 삼성전자의 경우 밀어내기는 할 수 없다. 브랜드가 글로벌 업체만 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국에 있는 삼성 대리점이 유통 채널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삼성의 실적도 액면 그대로 믿기 곤란한 것은 마찬가지다.
물론 예전과 같이 영세 업자에게 과도하게 물건을 떠맡기는 악성 밀어내기는 사라졌다. 그런 횡포를 받아줄 채널들도 없다. 그러다보니 이제 서버 업체들은 유통 채널 수 자체를 늘리는데 혈안이다.
결국 국내 서버시장의 성장이 유통 채널에게 달려있는 셈이다. 사상 최고 성장도 유통 채널들이 제품을 많이 받아줘서 그렇게 된 것이다. 3분기 시장이 줄어든 것도 2분기까지 경쟁적으로 시장 확대에 참여한 서버 업체들이 재고 쌓기에도 한계를 느껴 '조절'에 들어갔기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 옳다.
기자는 예언가도 아니고 시장 조사 전문가도 아니다. 하지만 시장 전망에 대한 예언 하나 하겠다.
"4분기 서버 시장은 3분기보다 성장한다."
공공 부문의 예산 집행이 집중되는 것도 있지만 이는 일부일 뿐. 유통 채널들이 연말 성과급을 노리고 제품을 받아 창고에 쌓아둘 것이기 때문이다. 일부 업체들이 실적 조절을 위해 자사 채널과 적당히 합의하에 양성화된 밀어내기도 한다 치면 4분기 시장은 또 급격한 성장세라는 엉뚱한 성적표를 받을 것이다.
팔았다는 사람은 많은데 산 사람은 적다. 이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밀어낸 서버들이 악성 재고가 돼 결국 덤핑 프로그램이나 저가 행사의 '지르기'용으로 둔갑하기까지 그 짧은 순간에 웃기 위해 서버 업체들은 유통 채널을 통한 실적 부풀리기에 여념이 없다.
강은성기자 esther@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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