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장유미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오는 8월 15일 광복절 가석방 심사 대상자 명단에 오른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재계에서 가석방이 아닌 '사면'을 고려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정부가 가석방 결정을 내리게 되면 이 부회장이 경영 활동뿐 아니라 글로벌 네트워크를 활용하는 측면에서 많은 제약이 따를 것으로 판단돼서다.
21일 재계와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구치소는 최근 이 부회장을 포함한 광복절 가석방 대상자 명단을 법무부에 보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법무부는 아직 정해진 바가 없다는 입장이지만, 여당에서도 이 부회장에 대한 '8월 가석방 가능성'을 직접 언급한 만큼 현실화 될 가능성이 높아지는 분위기다.
가석방은 일선 구치소·교도소가 예비심사를 통해 추린 명단을 법무부에 올리면 가석방심사위원회가 최종 심사를 진행하는 순서로 진행된다. 심사위가 표결을 통해 가석방을 결정한 후 법무부 장관 허가를 거치면 모든 절차가 마무리된다. 심사위는 다음달 초 회의를 열고 광복절 가석방 대상자들에 대한 최종 심사를 진행할 예정이다.
◆ 이재용, 광복절 가석방 가능성 ↑…이달 말 요건 갖춰
이 부회장은 지난 1월 '국정농단 파기환송심'에서 징역 2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구속 된 후 서울구치소에서 6개월째 복역 중이다. 오는 28일이면 복역의 60%를 채워 현행법상 가석방 조건을 채우게 된다. 가석방의 경우 모든 국민에게 공통으로 적용될 수 있는 제도이기 때문에 사면과 달리 정치적 부담은 덜하다.
하지만 가석방의 경우 형이 집행 중인 상태에서 수감만 풀려 나는 것이기 때문에 정상적으로 경영 활동을 할 수 없다는 제약이 있다. 반면 사면의 경우 대통령의 고유권한으로 형 집행 자체를 면제해주는 것이기 때문에 곧바로 모든 경영 활동을 시작할 수 있다.
집권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에서는 사면보다 가석방에 무게를 두는 분위기다.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난 20일 경기 화성시 삼성전자 화성캠프를 방문해 "3분의 2 형기를 마치거나 법무부 지침상 60% 형기를 마치면 가석방 요건이 된다"며 "이 부회장도 8월이면 형기의 60%를 마치게 돼 (가석방)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집권여당 대표가 이 부회장의 가석방 시기를 명확히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다만 송 대표는 "가석방은 법무부 장관의 소관이고, 사면은 청와대와 대통령의 권한"이라며 "반도체 산업의 요구와 국민 정서, 60% 형기를 마친 점 등을 갖고 (법무부가) 고민하고 있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유력한 대선주자 중 한 명인 이재명 경기도지사 역시 송 대표와 삼성전자 화성캠퍼스를 방문한 자리에서 "(이 부회장이) 특별한 존재라고 해서 법 앞에 특별한 혜택을 부여하는 것은 옳지 않고 또 한편으로는 재벌이라고 해서 가석방이라든지 이런 제도에서 불이익을 줄 필요도 없다"고 밝히며 이 부회장의 가석방에 힘을 실어주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재계 관계자는 "이 부회장을 두고 청와대나 법무부, 정치권에서 가석방에 대해 사전에 교감이 있지 않았나 싶다"며 "글로벌 반도체 경쟁이 격화되는 시기인 만큼 상황의 심각성을 인식해 이 부회장을 사면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지만 정부와 정치권은 정치적 셈법이 필요한 사면 대신 가석방에 무게를 더 두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 '오너 부재'로 투자 멈춘 삼성…재계선 '사면' 한 목소리
재계에선 기업 활동에 있어 제한이 많은 가석방 대신 '사면'을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가석방 시엔 특경가법상 5년간 취업할 수 없으며 보호관찰을 받아야 하고, 해외 출국 또한 쉽지 않아 경영 활동에 어려움이 많다.
손경식 경총 회장은 지난달 14일 경총 회장단 회의에서 "지난 4월 이후 경제부총리를 시작으로 청와대와 국무총리에게 이 부회장의 사면을 건의했다"며 "글로벌 반도체 경쟁이 격화되고 있는 시기에 이 부회장이 국가와 국민을 위해 봉사할 수 있는 기회가 하루빨리 만들어 질 수 있기를 바란다"고 재차 강조했다.
이어 "(정부·여당에서도 사면을) 충분히 검토하고 있다고 본다"며 "대만의 TSMC, 미국 마이크론 등이 나서고 있는 상황에서 투자결정이 늦어지면 우리도 순식간에 2위로 전락할 수 있다. 이는 한 회사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차원의 문제"라고 덧붙였다.
'총수 부재 리스크'로 투자 결정을 제대로 내리지 못하고 있는 삼성전자 역시 사면을 더 바라는 분위기다. 삼성전자는 1분기 말 기준 유동자산(1년 내 현금화 할 수 있는 자산 합계치)이 209조1천600억원으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으나, 이 부회장의 부재 여파로 반도체, 인수합병(M&A) 등과 관련한 대규모 투자 계획을 제대로 세우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반면 파운드리 업계 1위이자 경쟁사인 대만 TSMC는 향후 3년간 1천억 달러(약 114조원)를 투자해 미국 내 공장 6곳을 건설하는 등 대대적 투자 계획을 내놓은 상태로, 최근엔 일본 내 공장 설립 검토에도 나섰다. 또 지난 3월 파운드리 시장 재진출을 선언한 미국 인텔도 200억 달러를 투자해 애리조나주에 파운드리 공장 2곳을 짓는 한편, 300억 달러를 들여 세계 4위 파운드리 기업인 글로벌파운드리(GF) 인수도 도전한다. 이와 달리 리더십 공백 상태인 삼성전자는 미래 성장 동력 확보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
삼성전자가 투자 결정에 어려움이 있다는 사실은 김기남 삼성전자 부회장을 통해서도 고스란히 드러났다. 김 부회장은 지난달 청와대 간담회에서 "반도체 산업은 대형투자에 대한 결정이 필요하다"며 "총수가 있어야 의사결정이 신속하게 이뤄진다"고 밝혀 눈길을 끌었다.
재계 관계자는 "반도체 업종은 대규모 투자가 중요한데 투자를 결정할 수 있는 총수가 부재 중인 삼성전자로선 경쟁사들을 대응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라며 "정부가 기업 활동에 제약이 많은 가석방으로 결정을 내린다면 글로벌 활동을 이어가야 하는 이 부회장의 입장에선 큰 의미 없는 조치가 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장유미 기자(sweet@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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