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장유미 기자] 전 세계 반도체 패권 전쟁 여파로 경쟁사인 대만 TSMC와 미국 인텔이 '쩐의 전쟁'에 본격 나선 가운데 삼성전자가 '오너 리스크'로 여전히 제대로 된 투자 계획을 내놓지 못하면서 위기감이 감돌고 있다. 특히 올해 1분기에는 삼성전자의 반도체 실적 마저 모두 글로벌 경쟁사들에 뒤처진 것으로 나타나 '초격차' 전략에도 차질을 빚는 모습이다.
7일 업계에 따르면 세계 최대 반도체 위탁생산(파운드리) 업체인 대만 TSMC는 미국 애리조나주에 기존에 발표한 것보다 더 많은 공장을 지을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TSMC는 당초 미국에 반도체 공장 1개를 건설할 계획이었으나, 최근 미국 측 요청을 받고 향후 3년간 미국 애리조나주 피닉스에 최대 6개 공장을 건설키로 한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12일 TSMC, 삼성전자 등 전 세계 주요 기업들을 불러 모아 미국의 반도체 공급망 강화를 위한 투자를 촉구한 바 있다.
이후 TSMC는 지난달 15일 올해 1분기 실적 발표를 하면서 향후 3년간 설비 투자에 1천억 달러(112조원)를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당장 올해 설비투자 예산만 300억 달러(약 33조5천억원)에 달한다.
TMSC 측은 "(투자의) 유연성을 감안해 애초 애리조나에 넓은 땅을 확보했다"며 "일단 첫 공장을 건설한 뒤 운영 효율성과 비용 절감 효과, 고객 요구 등을 고려해 다음 단계를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미국 측 요청에 따른 것인지 묻는 질문에 대해선 부인하지 않으며 "공식적인 결정이 나오면 공개할 것"이라고 말했다.
TSMC는 지난해 5월 애리조나주에 120억 달러(약 13조원)를 들여 반도체 공장을 지을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곳에선 회로선폭 5나노미터(nm·10억분의 1m)의 최첨단 칩을 생산할 계획이다. 올해 착공해 2024년에 양산하는 것이 목표로, 생산능력은 웨이퍼 기준으로 월 2만 장이다.
또 TSMC는 지난달 23일 중국에도 반도체 공장을 증설할 것이라고 발표해 눈길을 끌었다. 중국 난징에 28억8천700만 달러(약 3조2천478억원)를 들여 생산라인 증설에 나설 방침으로, 이곳을 통해 공급난에 빠진 차량용 반도체를 생산할 예정이다. 이곳에서 만들 반도체 회로 선폭은 28nm 공정으로, TSMC의 최첨단 공장보다 최소 2세대 더 뒤떨어진 것으로 업계선 보고 있다.
인텔도 팻 겔싱어 CEO(최고경영자)가 올 2월 새로 취임한 후 제조 기술 리더십을 되찾기 위해 투자 속도를 높이고 있다. 지난 3월엔 미국 애리조나주 공장 두 곳을 짓는데 200억 달러(약 22조4천억원)를 투자한다고 밝히며 파운드리 사업 재진출을 알렸고, 지난 2일엔 이스라엘에 100억 달러(약 11조 원) 규모의 반도체 공장 건설을 시작했다는 사실을 공개했다.
또 자율주행·반도체 연구개발에도 6억 달러(약 6천700억 원)를 투자할 뿐 아니라 미국 뉴멕시코주 공장에 35억 달러(약 4조원)를 투입해 반도체 후공정(패키징) 기술 지원에도 나선다. 더불어 유럽에 반도체 생산시설을 짓기 위해 80억 유로(약 10조8천억 원) 규모의 보조금을 요청한 상태다.
업계 관계자는 "반도체 시장에서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선 새로운 기술과 투자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TSMC와 인텔이 공격적으로 투자에 나선 것은 미국 정부의 요청에 화답하는 동시에 반도체 시장에서 우위를 선점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처럼 TSMC와 인텔이 예상을 뛰어넘는 대대적인 투자에 나서면서 추격하는 입장인 삼성전자 역시 추가 투자에 대한 부담이 커졌다. 특히 지난달 미국 바이든 행정부의 요청으로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 확충 회의'에 초대 받았지만 발 빠르게 응답한 인텔, TSMC와 달리 지금까지 투자 계획을 제대로 내놓지 못했다. 또 오는 21일(현지시간)로 예정된 한미 정상회담 일정에 맞춰 답변을 내놓을 것이란 관측이 많지만 오너 부재 여파로 결정을 쉽게 내리지 못하는 분위기다.
여기에 1분기 실적까지 경쟁사들에 밀리는 모습을 보여 삼성전자의 반도체 사업에 대한 위기감은 더 커진 분위기다.
실제로 삼성전자는 반도체 부문에서 1분기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8% 증가한 19조원, 영업이익이 16% 감소한 3조3천700억원을 기록했다. 반면 인텔은 1분기 동안 197억 달러(약22조1천억원)의 매출과 함께 37억 달러(약 4조1천억원)의 영업이익을 달성했다. TSMC는 같은 기간 동안 매출 129억 달러(약 14조5천억원), 영업이익 53억6천만 달러(약 6조원)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삼성전자보다 매출은 4조원 이상 작지만 영업이익이 2배 가까이 높았다.
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가 점유율 1위인 D램 가격 급등에 힘입어 2분기부터 실적을 개선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장기적으로 초격차를 유지하기 위해선 파운드리 등 비메모리 부문의 경쟁력 확보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이에 삼성전자는 조만간 미국 반도체 신규 공장 증설 계획과 함께 경기 평택 P3 라인에 대한 투자 계획을 곧 내놓을 것으로 관측된다. 미국 신규 공장 투자 금액은 20조원, 평택 P3 라인은 최대 50조원에 달한다. 당초 평택 투자 계획은 올해 초 공개될 예정이었지만 이 부회장의 구속 수감으로 일정이 미뤄진 상태다.
재계 관계자는 "이 부회장이 그간 상속과 2건의 재판에 몰두했어야 하는 점을 감안하면 반도체 투자 계획이 미뤄지고 있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며 "옥중에 있는 상태에서 코로나19 여파로 한동안 변호인을 제외한 면회나 접견이 제한됐던 데다 충수염 수술까지 겹치면서 경영 현안을 제대로 살펴볼 여력이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오너 공백 영향으로 대규모 투자 결정이 늦어지면서 삼성전자의 '2030 시스템 반도체 1위' 목표도 점차 멀어지는 듯 하다"며 "삼성이 투자 계획을 차일피일 미루는 사이 TSMC, 인텔이 대규모 투자를 앞세워 미국과 동맹을 굳건하게 다지고 있는 점은 큰 부담 요인"이라고 덧붙였다.
또 다른 관계자는 "총수 부재, 사법리스크 장기화 상황에서 경쟁사들의 대규모 투자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는 만큼 삼성전자의 고민은 아주 클 것"이라며 "한국 경제 핵심인 반도체 산업이 위기에 빠지지 않기 위해선 삼성전자의 과감한 투자가 절실한 시점인 만큼 정부도 최근 각계에서 확산되고 있는 이 부회장의 사면에 대해 신중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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