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장유미 기자] 파운드리 업계 강자인 TSMC가 2위인 삼성전자와의 격차를 더 벌리기 위해 공격적 투자 행보를 보이고 있는 가운데 선장이 없는 삼성전자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갈수록 치열해져가는 반도체 패권 전쟁 속에서 의사 결정을 내려야 하는 총수의 부재로 시장에 기민하게 대응하지 못하면서 삼성전자를 넘어 한국 반도체 산업의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것이란 우려도 나오고 있다.
16일 빈과일보 등 대만 현지언론에 따르면 TSMC는 전날 1분기 기업실적 설명회에서 올해 투자액을 300억 달러(약 33조5천억원)으로 상향 조정했다고 밝혔다. 이는 지난 1월 발표한 280억 달러(약 31조원)보다 높아진 금액이다.
TSMC는 올해 매출 성장률 전망치도 기존 15%에서 20%로 상향했다. 앞서 이달 초에는 이번 300억 달러 투자액과 별개로 향후 3년간 1천억 달러(약 112조원)를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이에 따라 TSMC가 4년 동안 투자할 금액은 총 1천300억 달러(약 145조5천억원)에 이른다. 이는 삼성전자가 오는 2030년까지 시스템반도체 분야에 133조원을 투자할 것이라고 밝힌 금액보다 많다.
TSMC의 이같은 결정은 파운드리 시장의 성장세 때문이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올해 파운드리 시장 매출 규모는 946억 달러(약 105조6천682억원)로 전년 대비 11%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웨이저자 TSMC 최고경영자(CEO)는 "올해 반도체 산업이 12% 성장하고 파운드리 업계도 16% 성장할 것"이라며 "TSMC의 자동차 업계 고객의 차량용 반도체 부족한 현상은 3분기가 되면 대폭 개선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추격자' 입장인 삼성전자의 속은 타들어가는 모양새다. TSMC에 비해 시장 점유율이나 규모의 경제, 생산능력, 고객 수 등에서 뒤처지고 있는 상황에서 총수 부재로 시장에 맞는 투자 계획을 제대로 세우지 못하고 있어서다. 미국 내 반도체 공장 추가 증설만 해도 170억 달러(약 19조원)를 투입할 것이라고 일찌감치 밝혔지만 아직까지 반도체 투자를 확정짓지 못하고 갈팡질팡하고 있는 상태다.
또 TSMC가 투자액의 80%를 삼성전자와 경쟁을 벌이고 있는 3·5·7㎚(나노미터) 첨단 공정 개발에 사용할 것이라고 공언한 상태여서 삼성전자가 1위와의 격차를 줄이기는 더 쉽지 않아졌다. 올해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은 TSMC가 전년 대비 1%p 증가한 55%, 삼성전자가 전년과 동일한 17%일 것으로 전망된다. 즉 간극이 더 벌어지는 셈이다.
업계 관계자는 "TSMC의 대규모 투자는 수요가 계속 늘어나는 파운드리 시장에 대한 자신감을 표출한 것으로 볼 수 있다"며 "시장을 삼성에 내어주지 않겠다는 의지도 담긴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총수 부재 상황인 삼성으로선 갈수록 치열해지는 대만 TSMC와의 파운드리 경쟁 등에서 살아남기 위한 대규모 투자나 인수합병(M&A)에 대한 의사결정이 느려지면서 불안해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공백으로 삼성이 글로벌 반도체 경쟁에서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면서 삼성뿐 아니라 국내 반도체 산업에도 상당히 타격을 주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같은 분위기 속에 업계에선 삼성전자가 오는 29일 진행할 1분기 실적 컨퍼런스에서 어떤 투자 계획을 밝힐지를 두고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삼성전자가 기술력으로 TSMC와의 격차를 줄여나가겠다는 의욕을 드러내고 있지만 총수 부재 상황에서 경쟁사만큼의 행보를 보여주기는 쉽지 않을 것이란 분석이다.
업계 관계자는 "TSMC가 최근 미국과 대만, 일본 3국 간 '반도체 동맹'을 맺으면서 설계는 미국, 소재·장비는 일본, 제조는 대만이 맡는 식으로 협력 체계를 갖춰 삼성전자의 입지가 더 좁아진 상태"라며 "TSMC의 공격적 행보와 달리 삼성전자는 총수 부재 상황 속에서 점차 고립되는 모습을 보여 한국 반도체 산업 발전 측면에서도 상당히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이어 "1990년대 반도체 강국이던 일본이 투자 결정 속도가 늦어지면서 공격적으로 나선 삼성전자에 밀려나 결국 반도체 시장에서 도태됐던 사례가 있다"며 "이 부회장의 부재로 삼성전자 역시 의사결정 타이밍을 계속 놓치다 보면 일본처럼 위기를 겪을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장유미 기자(sweet@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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