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이란 거대한 암초에 걸린 마이크로소프트(MS)호는 순항을 계속할 수 있을까?
24일(현지시간) 유럽연합 집행위원회(EC)가 사상 유례없는 강력한 반독점 제재안을 발표함에 따라 MS의 향후 행보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마리오 몬티 EC 경쟁담당 집행위원장은 이날 ▲4억9천700만 유로(6억1천300만 달러) 벌금 부과 ▲90일 이내에 윈도PC와 서버 호환에 필요한 정보 제공 ▲120일 이내에 미디어 플레이어 삭제한 윈도 버전 출시 등을 골자로 하는 MS 제재안을 공식 발표했다.
EC가 MS에 부과한 6억1천300만 달러는 반독점 벌금으로는 사상 최대 규모. 하지만 500억 달러 이상에 달하는 유동성을 보유하고 있는 MS에겐 그리 큰 문제는 아니다. 굳이 비유하자면 '서민들이 주차위반으로 견인당한 정도' 라고 할까?
MS는 이보다 '번들정책 금지'를 우려하고 있다.
그동안 브라우저를 비롯한 신규 시장에 진입할 때마다 '윈도 프리미엄'을 톡톡히 누렸던 MS 입장에선 EC의 이번 판결로 적잖은 타격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MS 제재안을 주도한 몬티 위원장 역시 "이번 조치는 벌금 수준 보다는 제재조치가 훨씬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 '윈도 프리미엄 포기' 가능할까?
1990년대말 MS는 인터넷 브라우저 문제로 반독점 소송에 휘말린 적 있다. 당시 지리한 법정공방 끝에 MS의 불공정 행위가 인정돼 미 연방법원으로부터 다양한 제재명령을 받았다.
하지만 당시 법원 판결이 내려질 땐 문제가 됐던 '넷스케이프' 브라우저는 사실상 경쟁에서 밀려난 뒤였다. 따라서 법적 제재는 받았지만, 시장 경쟁 측면에선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았다. MS로선 챙길 것은 이미 다 챙긴 뒤였던 것.
하지만 오디오/비디오 재생 프로그램인 '미디어플레이어' 시장은 상황이 다르다.
이제 막 성장가도를 달리고 있는 신규시장이다. 최근 들어 각 사이트들이 멀티미디어 서비스를 강화하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향후 성장 전망도 밝은 편이다.
미디어 플레이어 시장은 MS와 리얼네트웍스가 치열한 승부를 펼치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전체 PC중 MS의 윈도 미디어 플레이어를 장착한 것은 61%, 리얼네트웍스의 리얼플레이어를 장착한 것은 57%로 나타났다. 애플의 퀵타임이 멀찍히 떨어진 3위를 기록하고 있다.
유럽 시장에선 다소 차이가 나는 편이다. 닐슨/넷레이팅스 자료에 따르면 지난 2월 윈도 미디어 플레이어는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네덜란드, 스페인, 스웨덴, 스위스, 영국 등에서 약 3천650만명의 순 사용자를 기록했다. 시장 점유율로는 30~40% 수준.
반면 리얼플레이어는 1천160만명으로 점유율이 7~15% 수준이었다. 애플의 퀵타임은 1천만명으로 7~14% 점유율을 기록했다.
이처럼 MS가 리얼네트웍스를 제치고 미디어 플레이어 부문 선두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던 것은 '번들링 전략' 덕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윈도95부터 미디어 플레이어 기능을 추가하면서 이 부문 선두업체였던 리얼네트웍스를 제칠 수 있었던 것이다.
MS가 EC측에 '미디어 플레이어를 뺀 윈도 버전을 판매하는 대신 윈도를 인스톨할 때 PC 하드드라이브에 경쟁업체의 미디어플레이어를 설치할 수 있도록 하자'는 제안을 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그만큼 미디어 플레이어 시장에서 '윈도 프리미엄'을 포기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 "미디어 플레이어 시장 큰 타격 없다"
EC는 미디어 플레이어를 번들 제공하는 윈도 운영체제에 할인 혜택을 부여하지 못하도록 했다. 또 미디어 플레이어를 제거한 윈도 버전의 성능을 떨어뜨리는 등의 불이익을 주는 것도 금지했다.
하지만 '미디어 플레이어를 제거한 윈도 버전을 사용하는 PC 제조업체들에 대해 인센티브를 주도록 해야 한다'는 리얼네트웍스의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번 명령으로 리얼네트웍스나 애플은 예전에 비해 경쟁의 폭이 넓어진 것만은 분명하다. 미디어 플레이어를 제거한 윈도 버전이 출시될 경우엔 '이론적으로는' 같은 환경에서 경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PC업체들이 유럽 시장에서 윈도 미디어 플레이어를 제거하기로 결정할 경우엔 상당한 파급 효과가 예상된다. IDC 자료에 따르면 서유럽은 전 세계 PC 시장의 4분의 1 정도를 점유하고 있다. 총 1억5천400만대로 집계된 지난 해 PC시장에서 서유럽은 3천600만대 정도에 이르렀다. 올해 서유럽 PC 시장은 9% 성장한 3천880만대로 예상되고 있다.
하지만 상황이 그렇게 간단한 것만은 아니다. PC업체들이 선뜻 '미디어 플레이어를 제거한 윈도 버전'을 선택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PC 가격에 큰 이점이 없는데 굳이 미디어 플레이어를 제거한 윈도 버전을 기본 운영체제로 탑재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MS 역시 이런 점을 집중 부각시키고 있다.
EC의 제재안 발표 이후 '미디어 플레이어를 제거할 경우 윈도 운영체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 현재 웹 상에서 유통되는 파일들이 대부분 윈도 미디어 플레이어 형식으로 되어 있다는 점 역시 중요한 고려대상이다.
C넷에 따르면 대부분의 PC업체들은 현 정책을 그대로 유지하겠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일부 업체들은 앞으로 재판 과정을 주시하겠다는 쪽이다.
이를 감안하면 가격 이점 같은 눈에 보이는 강점이 없는 한 미디어 플레이어를 제거한 윈도를 선택하는 PC업체는 그리 많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 롱혼 전략에 영향 불가피
EU의 이번 제재안이 MS의 미디어 플레이어 전략에 결정적인 타격을 가하지는 못할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MS로선 오히려 출시를 앞두고 있는 윈도 차기 버전이 훨씬 더 신경쓰이는 부분이다.
암호명 '롱혼'으로 통하는 윈도 차기 버전에는 3차원 그래픽 및 검색엔진 기능 등을 번들 제공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홈엔터테인먼트, 인스턴트 메시지, 모바일 기술도 통합된다. 롱혼은 MS '통합전략'의 결정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롱혼은 스티브 발머가 강조했던 '통합적 혁신(integrated innovation)' 전략을 바탕에 깔고 있다. 발머는 지난 해 여름 "우리는 통합을 통해 단일한 고객 가치를 보여주고 실행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파이낸셜타임스 역시 MS 제재안이 발표되기 전 "EU가 MS에 대해 강력한 제재를 희망하는 것은 바로 롱혼 때문"이라고 보도해 이같은 사실을 뒷받침했다.
EU의 이번 제재 방안은 MS의 윈도 활용 방안의 가이드라인을 잡겠다는 의도가 다분히 깔려 있다. 2006년 '롱혼' 출시를 앞둔 MS로선 EU의 이같은 움직임이 신경쓰이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스티브 발머를 비롯한 MS 경영진들은 EU의 이번 판결이 '롱혼 전략'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이라고 장담하고 있다.
법률 자문역인 브래드 스미스는 "우리에겐 개발팀들에 향후 윈도 개발 방향에 대한 법률 자문을 해주는 변호사들이 있다"면서 "유럽의 법률이 미국과는 다르다고 명시적으로 밝힐 경우가 아니면 큰 변화는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런 장담에도 불구하고 윈도 차기 버전이 'EU 역풍'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EU의 이번 판결은 '선례'로 작용할 것이기 때문이다. 경쟁업체들 역시 EU 판결이란 칼날을 쉴 새 없이 들이대며 MS를 압박할 가능성도 많다.
◆ 최소 4, 5년 법정공방 불가피할듯
MS는 EU의 이번 명령에 대해 항소하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한 바 있다. MS는 항소와 함께 120일 내에 미디어 플레이어를 제거한 윈도 버전을 출시하라는 EU의 명령을 유예해 달라는 요구도 함께 할 전망이다. '서버 연동 코드 공개' 명령 역시 유예해 달라고 할 것으로 보인다.
물론 유럽재판소가 '유예 명령'을 받아내려는 MS의 의도대로 움직여줄 지는 미지수다. '미디어 플레이어를 제거한 위도 버전을 출시하라'는 명령이 MS의 비즈니스 관행을 뒤흔들 정도로 위협적이라고 보기 힘든 측면도 있기 때문이다.
'윈도PC와 서버간 연동 코드 공개'란 명령을 받아든 선마이크로시스템스가 '유예 요청을 받아들일 경우 서버 시장이 풍비박산 날 수도 있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도 이같은 위기 의식을 반영한 것.
EU의 이번 판결로 MS 반독점건은 다시 한번 법정의 심판을 받게 됐다. 현재로선 최소 4, 5년 정도 지리한 법정 공방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 공방이 '브라우저 전쟁'의 재판이 될지, 아니면 MS의 딴죽을 잡는 계기가 될 지는 좀 더 두고봐야 할 것 같다.
김익현기자 sini@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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