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윤선훈 기자] 반도체 호황이 지속되면서 국내 반도체 업계는 2분기에도 호실적을 기대하고 있다. 수출에서 차지하는 반도체 비중도 매년 증가하는 추세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국내 반도체 산업의 성장성이 향후에도 계속될지 불투명하다는 전망이 팽배하다.
21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중국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바탕으로 급속하게 진행되고 있는 중국의 '반도체' 굴기로 당장 하반기부터 중국 반도체 업체들의 생산 라인 확장이 예상된다.
중국 정부는 이미 2026년까지 자국 반도체 산업에 약 200조원을 투자하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이를 통해 현재 15%인 반도체 자급률을 2025년까지 70%로 끌어올리겠다고 발표했다.
이는 중국 정부가 자국 반도체 업체들의 육성에 향후 몇 년 간 적극적으로 나서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국내 반도체 업체 입장에서는 반도체 수출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중국 시장 공략에 가시밭길이 예고된 셈이다. 중국 업체들의 엄청난 생산량으로 메모리 반도체 가격이 하락할 수 있다는 점도 부담이다.
물론 중국 업체들의 기술적 한계로 인해 당장 국내 업체에 커다란 위협이 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중국 정부는 자국의 메모리 반도체 자급률을 높이기 위해 시설투자를 적극적으로 하고 있지만, 아직 D램과 낸드플래시 양산 단계에까지 이르지는 못했다. 일부 중국 업체들이 자체 기술로 32단 3D 낸드를 개발했고 연내 양산 예정이지만 현재 시점에서는 아직 본격화되지 않았다.
다만 중국 업체들의 생각보다 높은 기술 수준도 곳곳에서 눈에 띈다. 중국 국영기업 칭화유니그룹의 자회사 'UNIC 메모리 테크놀러지'는 최근 최첨단 4세대 64단 3D낸드 시제품을 공개했다. 이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국내 기업들의 현재 주력 제품인데, 그간 중국 업체의 메모리반도체 기술 수준이 64단 낸드 제조까지 이르지 못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중국의 반도체 기술 수준이 급격히 높아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국내 반도체 업체들은 현재 5세대 96단 3D 낸드 기술을 준비 중이고, 때문에 아직 양국 간의 기술 격차에는 다소 차이가 있다. 다만 중국 업체들의 빠른 기술 발전 속도가 변수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이 만일 내년부터 64단 낸드를 본격적으로 생산한다면 기술 격차는 1~2년 수준으로 좁혀질 것"이라고 말했다.
더욱이 세계적인 반도체 업체인 미국 인텔이 올해 들어 칭화유니그룹과 메모리 기술 개발 관련 제휴를 강화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중·장기적으로 국내 업체들에게 타격이 될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중국 정부 차원의 통상 압박도 더해졌다. 중국 정부는 지난달 31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미국 반도체 업체 마이크론 등 반도체 3사를 상대로 반독점 위반 조사에 착수했다. 이들은 지나치게 높은 가격으로 가격을 담합했다는 의혹을 중국 정부로부터 받고 있다.
중국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국내 반도체 업체를 대상으로 가격 인하 압박을 지속했다. 지난해 말 중국 스마트폰·PC 제조사들이 중국의 국가발전개혁위원회에 메모리 반도체 가격이 계속 오르는 데다가 공급도 원활하지 않다며 삼성전자를 제소했다. 국가발전개혁위원회는 지난 2월 삼성전자에 가격 인상을 자제하라고 요구했다.
문제는 국내 반도체 수출의 70%가 중국에 몰려 있다는 점이다. 만일 중국이 제재를 가할 경우 국내 반도체 업체들은 물론 한국의 수출 전선에도 상당한 타격을 입을 수 있는 것이다.
업계에서는 전세계 D램 시장 점유율이 1분기 기준 삼성전자 45%, SK하이닉스 28%에 이를 정도로 막대하기 때문에 제재를 받더라도 당장 직접적인 타격이 크지는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중국 국내 업체들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까지 고려하면 중·장기적으로는 한국 반도체 업체에 상당한 위협으로 다가올 수 있다는 관측이다.
단기적인 위험요인도 있다. 하반기 본격적으로 늘어날 중국 업체들의 메모리 생산량이 변수라는 지적이다. 이주완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연구위원은 지난 20일 한국경제연구원 주최로 열린 '혁신성장을 위한 반도체 산업 경쟁력 강화방안 세미나'에서 "올해 하반기에 완공될 중국 기업의 메모리 생산량만으로 공급 부족에서 과잉으로 전환될 수 있다"며 "중국 정부의 시설투자가 완료되는 2025년에는 중국의 반도체 시장 점유율이 18%대까지 증가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메모리 반도체에 다소 편중된 반도체 산업 구조도 위험요소로 꼽힌다. 중국 정부가 메모리반도체 위주로 '반도체 굴기'를 시행하고 있는데, 이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보다 다변화된 반도체 산업 육성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문병기 한국무역협회 동향분석실 수석연구원은 '반도체의 수출 신화와 수출경쟁력 국제비교' 보고서에서 "우리나라 반도체 수출은 메모리반도체 위주로, 시스템메모리 등 비메모리 반도체 중심의 세계 반도체 시장과 괴리된 구조를 가지고 있다"며 "중장기적으로 반도체의 국제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 메모리 분야의 기술 격차를 유지하고 시스템반도체 육성을 위한 노력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송용호 한양대 교수도 20일 세미나에서 "현재의 반도체 관련 실적은 대기업이 주도하는 메모리 반도체 제품 영역에 국한된 실정"이라며 "전 세계 반도체 시장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시스템 반도체의 경우 국내 팹리스 기업의 시장 점유율은 1%에도 미치지 못하고, 그 규모도 영세하고 최근에는 창업도 단절됐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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