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고기 굽기도 시험 본다…선진 '그릴링마이스터' 도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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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도계·타이머 들고 삼겹살·목살 굽기…감 대신 매뉴얼
필기·실기 합산 300점 이상이면 합격…누적 취득자 393명
원육 공급 넘어 조리 기술 표준화…일반인 도전도 늘어

[아이뉴스24 구서윤 기자] 고기를 올리기 전, 온도계부터 들여다봤다. 목표는 210도. 평소라면 센 불로 달군 불판에 고기를 올렸겠지만, 이날은 중약불로 천천히 예열하며 기다렸다. 차가운 삼겹살을 올리자 불판 온도가 내려갔다. 고기는 익어가는데 예상했던 자욱한 연기는 보이지 않았다. 돼지고기 지방의 특성을 고려해 조리 온도를 알맞게 조절한 탓이다.

삼겹살이 올바르게 구워지는 모습. [사진=구서윤 기자]
삼겹살이 올바르게 구워지는 모습. [사진=구서윤 기자]

14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약산돼지'에서 열린 선진의 제19회 '그릴링마이스터' 자격시험 현장. 참가자들은 삼겹살과 목살을 앞에 두고 온도와 시간을 확인하느라 분주했다. 곳곳에서 "삑삑삑" 타이머 알람이 울렸다. 고기를 뒤집는 손길에도 긴장감이 묻어났다.

고기 굽는 감각, 온도와 시간으로 평가

차효명 선진기술연구소 식품솔루션팀장은 참가자들 사이를 오가며 불판 온도와 고기 상태를 살폈다. 온도가 높은 경우에는 조절을 권하고, 잘 구워진 고기는 다른 참가자들도 맛보도록 했다. 같은 원육을 앞에 두고도 조리 결과는 달랐다.

삼겹살이 올바르게 구워지는 모습. [사진=구서윤 기자]
차효명 선진기술연구소 식품솔루션팀장이 한 참가자가 구운 고기를 평가하고 있다. [사진=선진]

선진 식육문화연구원이 운영하는 그릴링마이스터는 돼지고기에 대한 지식과 실제 굽기 능력을 평가하는 등록 민간자격이다. 필기는 돼지고기 문화와 역사, 생산·가공, 관능·영양학적 품질 요소, 구이조리기능 등 네 과목으로 구성된다. 실기에서는 선진포크한돈을 활용해 온도 관리와 시어링 등 조리 역량을 평가한다. 필기 200점, 실기 300점으로 합산 300점 이상이면 자격을 취득한다. 응시료는 10만원이다.

현장에는 외식업계 종사자와 고깃집 창업자뿐 아니라 고기 굽기에 관심 있는 일반인도 모였다. 포항에서 찾아온 참가자도 있었다.

삼겹살이 올바르게 구워지는 모습. [사진=구서윤 기자]
한 참가자가 완성한 삼겹살과 목살구이. [사진=구서윤 기자]

김현규(35) 세광그린푸드 직영관리팀 차장은 "식당에 걸린 그릴링마이스터 인증패를 보고 관심을 갖게 됐다"며 "210도에서 목살을 먼저 올리려 했는데 삼겹살까지 동시에 올리면서 온도를 맞추지 못해 삼겹살은 조금 아쉽게 구워진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 강서구청 인근에서 고깃집을 창업한 지 한 달 됐다는 어규빈(33)씨는 "고깃집에서 3년 정도 일했지만 좀 더 자세히 배우고 싶어서 왔다"며 "직원들에게도 오늘 배운 기술을 전수할 예정"이라고 했다.

"고기가 탄다"는 고객 문의에서 출발

프로그램의 출발점은 선진의 원육을 납품받는 고객사의 고민이었다. "고기가 자꾸 탄다"는 문의를 받고 현장을 살펴보니 원육뿐 아니라 보관과 굽는 방식에 개선할 부분이 있었다는 설명이다. 좋은 고기를 생산하는 것만으로 소비자가 경험하는 맛을 보장하기는 어려웠던 셈이다.

삼겹살이 올바르게 구워지는 모습. [사진=구서윤 기자]
차효명 선진기술연구소 식품솔루션팀장이 삼겹살 부위를 소개하고 있다. [사진=선진]

셰프와 교육 경험이 있는 차 팀장은 조리 원리를 식당에서 재현할 수 있는 매뉴얼로 만드는 데 집중했다. 그는 "문제는 현장에서 어떻게 구현할지였다"며 "현장 검증을 거의 1년 넘게 거쳐 매뉴얼을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이날 시연도 감보다 기준을 강조했다. 고기 표면의 수분을 닦아내고, 불판과 고기가 고르게 닿도록 눌러주며 표면에 갈색과 구운 향을 만드는 마이야르 반응을 유도했다.

210도 예열 역시 냉장 상태의 원육을 올리면 불판 온도가 떨어지는 조건을 고려한 설정이다. 차 팀장은 고기 두께와 굽는 시간을 함께 맞추고, 초벌한 고기를 잠시 쉬게 하는 레스팅과 균일하게 써는 과정까지 설명했다. 삼겹살 지방도 무조건 제거할 대상이 아니라, 살코기와의 분포와 조리 상태를 함께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직접 구워보니…목살도 부드럽고 촉촉

삼겹살이 올바르게 구워지는 모습. [사진=구서윤 기자]
그릴링마이스터 자격시험을 위한 준비물이 놓여 있다. [사진=구서윤 기자]

기자도 시험에 도전하듯 고기를 구웠다. 온도계로 불판을 확인하고 삼겹살을 올린 뒤 타이머를 맞췄다. 평소에는 고기 색을 보고 뒤집을 때를 정했지만 익숙한 눈대중 대신 숫자를 따라가니 기다리는 시간부터 다르게 느껴졌다.

고기가 익는데도 자욱한 연기가 나지 않는 점도 낯설었다. 차 팀장은 돼지 지방의 발연점을 약 189도로 설명하며, 조리 중 지방이 타면서 연기가 나지 않도록 온도를 관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불을 세게 올려야 잘 구워진다는 생각과는 다른 경험이었다.

배운 방식으로 구운 목살은 부드럽고 촉촉했다. 식은 뒤에도 육즙이 남아 있었다. 차 팀장은 "매뉴얼대로 하면 누구나 완벽하게 고기를 구울 수 있다"고 말했다.

삼겹살이 올바르게 구워지는 모습. [사진=구서윤 기자]
차효명 선진기술연구소 식품솔루션팀장이 시험 시작에 앞서 돼지고기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선진]

선진은 불판의 온도 유지와 지방이 흘러내리는 속도까지 고려한 특허 불판도 개발했다. 사료·양돈·식육 유통·육가공에 이어 조리 단계까지 관리해 매장별 맛의 편차를 줄이려는 시도다.

2021년 시작한 그릴링마이스터는 지난 18회까지 누적 393명의 취득자를 배출했다. 지난해부터는 일반인으로 응시 대상을 넓혔다. 선진은 취득자를 위한 후속 관리와 리워드 프로그램도 고민하고 있다. 원육의 품질을 식탁 위 맛으로 연결하려는 연구가 고기 굽는 사람의 전문성을 인증하는 영역으로 이어지고 있다.

/구서윤 기자(yuni2514@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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