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박지은 기자] 가전업계의 셈법이 바뀌고 있다. 새 제품을 한 번 판매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수리와 부품 공급, 리퍼비시(재정비), 재판매로 한 제품의 가치를 계속 이어가는 ‘수리경제’가 새로운 시장으로 떠올랐다.
유럽연합(EU)이 ‘수리할 권리’를 제도화한 가운데 'IFA 2026'에서도 제품의 첫 판매 이후 어떻게 새로운 수익을 창출할 것인지가 주요 화두로 등장했다. 삼성전자와 LG전자 등 국내 가전업체들도 리퍼 부품과 재정비 가전을 앞세워 관련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7일 업계에 따르면 IFA는 지난 5일(현지시간) 독일 베를린에서 '전자폐기물에서 가치로: 첫 판매 이후 가치 창출'을 주제로 세션을 열었다.
세션에는 카린 샤르동 독일가전통신전자협회(GFU) 대표를 비롯해 밀레, 유로닉스, 수리 전문업체 '리파틀리'(Repartly) 등이 참석했다.
참석자들은 제품을 수리하고 재정비해 오래 사용하는 일을 지속가능성 차원에만 머물게 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애프터서비스와 고객 유지, 부품 공급, 재판매 등 첫 판매 이후의 새로운 사업 기회로 연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삼성은 '리퍼 부품'·LG는 '리퍼 가전'
세계 시장을 무대로 뛰어온 국내 가전업체들도 수리와 재생을 활용한 사업에 나서고 있다.
삼성전자서비스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가전제품 리퍼 부품 사용량은 전년 동기보다 4배 이상 증가했다. 기존 제품에서 회수한 부품을 정밀 가공해 성능과 품질을 개선한 뒤 다시 사용하는 방식이다.

에어컨과 세탁기 회로기판(PBA), 청소기 센서 등에 적용되며 비용은 신규 부품보다 최대 50% 저렴하다. TV는 고장 난 부분만 교체하는 단품 수리를 활용하고 있다. 올해 1분기 TV 패널 수리의 약 40%가 이 방식으로 진행됐다.
LG전자는 지난 6월 정부의 '순환경제 선도기업·산단 협약'에 참여해 리퍼비시 제품 사업 실증(PoC)에 나섰다. 폐가전을 회수해 진단·수리·검증하는 과정을 거쳐 다시 활용하는 사업 모델을 시험하고 있다.
EU 새 '수리할 권리'…한국은 소비환경 달라
유럽에서는 제도 변화도 본격화했다. EU는 지난 2024년 '수리할 권리(Right to Repair)' 지침을 채택·발효한 데 이어 지난 7월31일부터 회원국에서 관련 규칙을 적용하기 시작했다.
새로운 수리할 권리는 '소비자가 대상 제품에 대해 제조사에 수리를 요구할 수 있도록 하고 수리 관련 정보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는 것'이 핵심이다.
보증기간 내 교체 대신 수리를 선택하면 보증기간도 12개월 연장된다.

다만 유럽의 수리 문화를 국내에 그대로 적용하기는 어렵다는 시각도 있다. 인건비와 애프터서비스 체계, 소비자의 제품 이용 방식 등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영애 인천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유럽은 인건비가 비싸 소비자가 직접 고치려는 유인이 있을 수 있지만 우리나라는 아직 가전제품을 직접 수리하려는 수요가 크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다만 이 교수는 "누가 고치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고칠 수 있느냐의 관점에서 봐야 한다"며 "기본적인 부품 보유 연한은 마련돼 있지만 소비자가 원하는 경우 합리적인 비용으로 원활하게 수리할 수 있는지는 따져볼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국내에서도 국책연구기관 차원의 연구와 접근이 이뤄지고 있다.
한국환경연구원(KEI)은 최근 정책 브리프에서 수리를 재제조나 재활용보다 우선적으로 고려할 전략으로 평가했다. 반면 부품·수리정보에 대한 접근 부족과 높은 비용, 제조사의 유인 부족 등을 활성화의 걸림돌로 꼽았다.
한편, 세계 최대 가전 제조국인 중국에서도 수리와 리퍼비시 관련 법·제도 정비가 이뤄지고 있다.
중국에서는 지난 3월 중고 세탁기, 5월에는 중고 냉장고·에어컨의 품질 판정 국가표준이 각각 시행됐다. 표준 제정에는 미디어와 하이얼, 하이센스 등 주요 가전업체가 참여했다.
/박지은 기자(qqji0516@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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