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이한얼 기자] 미국과 이란 전쟁으로 글로벌 원유 공급망 불안이 커지면서 국내 정유업계가 중동 의존도를 낮추기 위한 수입선 다변화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중동 외 지역으로 조달 구조를 바꾸려 해도 설비 자체가 중동산 원유에 최적화돼 있어 전략 전환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내 정유업계는 중동산 원유에 절대적으로 의존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한석유협회가 발간한 '2025년 석유 수급 동향'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사우디아라비아산 원유 수입 비중이 33.6%로 가장 컸다. 이어 미국(17.0%), 아랍에미리(UAE·11.4%), 이라크(10.4%), 쿠웨이트(8.5%) 순으로 집계됐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 등 지정학적 리스크가 현실화되자, 정유업계는 중동 외 지역에서 원유를 확보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정유 4사는 지난 2022년 이후 수입이 중단됐던 러시아산 원유 도입까지 검토하는 등 조달처 다변화에 나선 상황이다.
그러나 원유 수입 구조를 다변화하더라도 설비 측면의 제약은 여전하다.
현재 국내 정유설비의 대다수가 중질·고황 중심의 중동산 원유 처리에 맞춰 설계돼 있기 때문이다. 중동산 원유는 황 함량이 높고 점도가 높은 대신 가격 경쟁력이 있어 이를 전제로 한 고도화 설비가 국내 정유사의 핵심 경쟁력으로 자리 잡아 왔다.
수십 년간 축적된 설비 구조와 운영 방식 역시 이러한 원유 특성에 최적화돼 있다.
문제는 미국산 등 경질유를 기존 설비에 투입할 경우다. 경질유는 황 함량이 낮고 가벼운 대신 제품 수율이 기존 설비와 맞지 않아 수익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일부 공정에서는 과잉 생산이나 비효율이 발생해 정제마진을 훼손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 탓에 정유사들은 조달처 다변화와 수익성 사이에서 딜레마에 놓인 상황이다. 공급망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중동 외 원유 도입이 필요하지만, 기존 설비를 유지할 경우 비용 부담이 커지는 구조다. 근본적인 해결책으로는 설비 전환이나 공정 개편이 거론된다.
경질유 처리 비중을 높일 수 있도록 설비를 개선하고, 원유 특성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유연한 공정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데 정유사들 역시 인식을 같이 하지만 막대한 투자비 부담과 가격 경쟁력이 높은 중동산 원유를 쉽게 포기하기 어려운 점 등이 맞물리면서 현실적인 제약이 크다는 지적이다.
정유업계 한 관계자는 "탈중동이라는 방향성과 기존 설비 구조 사이에서 당분간 줄타기를 이어갈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지정학적 리스크가 상시화되는 가운데 공급망 안정과 수익성 확보를 동시에 달성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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