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김종성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전임 바이든 행정부의 '전기차 의무화' 정책을 폐기하겠다고 선언했다. 향후 전기차 구매 보조금(세액공제) 등을 규정한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 따른 혜택 축소가 예상되는 만큼 한국 자동차와 배터리 업계도 긴장하며 향후 혜택 축소 대비에 나섰다.
트럼프 "'그린 뉴딜' 종식⋯전기차 의무화 철회" 선언
트럼프 대통령은 20일(현지시간) 47대 대통령 취임사에서 "'그린 뉴딜'(친환경 산업정책)을 종식하고, 전기차 의무화를 철회한다"며 "자동차 산업을 구하고, 위대한 미국 자동차 노동자들에 대한 약속을 지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전기차 의무화 정책 폐기를 공식화한 것. 조 바이든 전 대통령이 오는 2030년까지 신차 판매량의 56%를 전기차로 판매하는 정책을 추진해 왔는데 이를 철회하겠다는 뜻이다.
트럼프의 이같은 정책 기조는 대선 과정에서부터 예고됐다. 트럼프 대통령이 전기차 의무화로 내연기관 차량 판매가 줄어들면, 지지기반인 자동차 제조업 분야에서 20만 개의 일자리가 사라질 것을 우려했다는 분석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행정명령 등을 통해 전기차로 대표되는 친환경차 우대 정책을 대폭 축소할 가능성이 크다는 게 업계의 전망이다.
전기차 의무화가 철회되면 한국의 최대 자동차 수출 시장인 미국에서 전기차 확산 속도가 둔화하고, 내연기관차와 하이브리드차 중심의 완성차 시장 구조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IRA는 완성차와 배터리를 대상으로 △구매자 대상 전기차 세액공제 △투자 세액공제 △첨단제조생산 세액공제(AMPC) 등 크게 3가지 혜택을 부여한다. 특히 전기차를 구매하는 소비자가 받을 수 있는 최대 7500달러의 세액공제와 배터리업체가 받는 AMPC의 존속 여부가 국내 업체들에게 가장 큰 관심사다.
AMPC는 자국 내 생산설비 투자 기업에 대해 배터리셀은 킬로와트시(kWh)당 35달러, 모듈은 kWh당 10달러를 환급하는 제도다. 국내 배터리 제조사들은 AMPC를 통해 분기마다 최대 수천억원의 혜택을 받았다.
IRA를 폐기하려면 상·하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트럼프가 속한 공하당이 상·하원 다수당이긴 하지만, IRA로 타국 업체들이 공장을 지은 미시간, 오하이오 등의 공화당 의원들이 현지 고용 악영향을 우려해 IRA 폐기에 반대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은 IRA를 즉각적으로 폐기하기보다는 중국 등 해외우려기업(FEOC) 규제를 강화하는 방법 등으로 보조금을 줄일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車·배터리 업계, 정책 불확실성 확대 속 美 투자 기조 유지하며 유연 대응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으로 정책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미국 현지 생산거점 구축 등 투자를 늘려온 현대차·기아, LG에너지솔루션·SK온·삼성SDI 등은 혜택 축소 가능성에 대비해 여파를 최소화하기 위한 대응에 주력한다는 방침이다.
현대차그룹은 미국 조지아주 전기차 공장인 '현대차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를 지난해 말부터 가동했다. IRA 축소나 폐지 시 파급은 크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지만, 126억 달러를 투자한 만큼 해당 공장에서 하이브리드차 생산을 병행하고, 올해 내 생산량을 연간 50만 대까지 늘리는 등 현지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대응한다는 방침이다.
고관세 부과 등을 피하기 위한 현대차그룹의 추가 투자 가능성도 제기된다. 지난 2022년 이후 현대차그룹의 대미 총투자액은 178억5000만 달러(26조원)에 달한다. 현대차그룹은 HMGMA와 현대차 앨라배마공장, 기아 조지아공장의 총 연간 생산량을 118만 대까지 끌어올려 미국 현지 생산 비중을 70%까지 늘릴 계획이다.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정체) 장기화로 수익성이 크게 악화된 배터리 업계는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에 따른 시장 환경 변화를 예의주시하면서도, 현지 생산시설 투자 계획은 계획대로 이행하고 있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투자를 단행해 지속가능한 성장 동력을 확보하겠다는 구상으로 풀이된다.
LG에너지솔루션은 미국 애리조나 공장에 약 7조2000억원을 투자해 차세대 원통형 배터리 생산 라인을 구축하고, GM과 합작법인으로 추진한 얼티엄셀즈 3공장을 인수해 단독 공장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SK온은 올해 포드와의 합작사 블루오벌SK의 켄터키 1공장과 테네시 공장, 조지아주의 현대차 합작 공장 등 3곳의 가동을 시작한다. 삼성SDI 역시 미국 스텔란티스와의 합작사(JV)인 스타플러스 에너지(SPE)의 생산공장 4개 라인 중 1개 라인을 지난해 말 조기 가동한 데 이어 올해 1분기부터 나머지 3개 라인을 차례로 가동할 예정이다.
아울러 배터리 제조사들은 중국 의존도가 높은 흑연·리튬 등 배터리 핵심 광물의 공급망을 다변화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박태성 한국배터리산업협회 부회장은 최근 열린 '트럼프 2.0 배터리 정책 대응 세미나'에서 "우리나라는 대미 배터리 최대 투자 국가로서 미국 러스트벨트 지역의 투자와 일자리 창출에 많은 기여를 하고 있으며, 특히 트럼프 2기 기간에 대부분의 생산시설이 완공된다"며 "트럼프 2기 출범을 계기로 우리 기업의 현지 배터리 제조공장이 미국의 과도한 중국 배터리 공급망 의존을 완화하고, 양국 배터리 협력을 공고히 하는 역할을 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김종성 기자(stare@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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