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은 우리 역사상 첫 현직대통령의 구속이란 오점을 남겼다. 국가적 수치이다. 그 과정에서 초유의 법원난동으로 법치주의가 또다시 짓밟힌 것은 개탄할 일이다. 하지만 윤 대통령의 구속으로 12.3 비상계엄과 탄핵 정국이 새로운 전환점을 맞고 있다.
헌법재판소의 탄핵소추 심리 일정이 가시화되면서 정국은 빠르게 조기 대선 국면으로 전환되고 있다. 여야는 공식적으론 조기 대선을 언급하지 않고 있으나, 각 당은 물밑에서 이미 대선 준비에 들어갔으며 설 이후 본격적인 움직임이 시작될 것이다.
특히 윤 대통령의 제왕적 대통령제와 적대적 양당 정치의 구조적 폐해를 경험한 국민들도 이런 문제를 혁파하고 나라를 정상화할 차기 대통령이 누가 될 것인지에 관심을 집중하고 있다.
최근 여론조사 결과는 주목할 만한 변화를 보여준다. 보수결집이 뚜렷하다. 20일 발표된 리얼미터 여론조사에서 국민의힘 지지율이 46.5%로 더불어민주당(39.0%)을 오차범위 밖에서 앞섰다. 17일 한국갤럽 조사에서도 국민의힘 39%, 민주당 36%를 기록했다. 특히 주목할 점은 윤 대통령 탄핵 찬성이 57%에 달하는데도 민주당 지지율은 이에 훨씬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다. 윤석열 심판론이 곧바로 민주당 지지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시사한다. 한 정치 평론가는 "윤 대통령을 단죄하는 것과 이재명 대표가 대통령이 되는 것은 별개라는 흐름"이라고 분석했다.
또한 위 리얼미터의 '차기 대선 집권세력 선호도'를 묻는 조사에서 '집권 여당의 정권연장'이 48.6%, '야권에 의한 정권교체'가 46.2%로 나온 것은 충격적이다. 탄핵정국이란 매우 유리한 국면에서 민주당으로선 위기의 커다란 징표가 아닐 수 없다.
우선 민주당이 직면한 가장 큰 문제는 이재명 대표와 연관이 있다. 이 대표가 여야를 통들어 압도적인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으나 그에 대한 비호감과 비토 정서도 만만치 않다. 172석의 거대 야당임에도 당내 토론이 거의 실종되다시피 하여 여러 현안에 대해 민주적, 역동적으로 해결하는 모습을 보기 어렵다. 이 대표의 일극체제가 보여준 민주당의 한계이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헌재의 탄핵 결정이 2∼3개월 안에 이루어질 경우 조기 대선이 불가피한데도 당내 대선 후보 경선 논의가 사실상 금기시되고 있는 점이다. 이미 민주당은 집권플랜본부를 만들어 이 대표의 후보 선출을 기정사실화하는 쪽으로 분위기를 몰아가고 있다. 당 지도부는 탄핵정국을 이유로 경선 논의 자체를 회피하고 있으나 이는 2017년 박근혜 대통령 탄핵 당시 보여주었던 민주당의 개방적이고 역동적인 모습과는 상반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한 이 대표가 직면한 사법리스크도 민주당으로선 곤욕스러운 사안이다. 3~4월경으로 예상되는 이 대표의 공직선거법 관련 2심 판결이 유죄로 나올 경우, 이는 민주당의 대선 전략에 치명적 타격이 될 수 있다. 한 정치 컨설팅 전문가는 "이 대표의 지지율이 하락하거나 답보상태를 보이는 가운데 만약 대선 전에 2심이 유죄로 나와 중도 및 지지층의 표심이 흔들리면 당내에서 큰 혼란을 겪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또한 172석의 다수당에 대통령까지 된다면 무소불위의 권력 집중이 가져올 폐해를 우려하는 여론도 만만치 않다. 민주당이 그간 국무총리와 장관 등 29번의 탄핵과 무리한 입법 시도, 그리고 탄핵국면에서 보여준 공격적인 행태들이 다수 국민의 뇌리속에 남아있음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반면 보수 진영은 오세훈 서울시장, 한동훈 전 당대표, 홍준표 대구시장 등 다수의 잠재적 후보들이 조기 대선을 위해 벌써부터 움직임이고 있다. 개혁신당 이준석 의원이 가세한다면 보수 진영의 대선 경선은 역동적인 양상으로 전개될 수도 있다. 대통령 탄핵이라는 보수 진영의 위기 상황에서도 이처럼 반전의 기회가 마련되고 있다는 점은 민주당으로서는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할 대목이다.
이러한 위기 극복을 위해 민주당이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가 적지 않다. 우선, 설 이후 적절한 시기에 당내 대선후보 경선을 공식화하며 대강의 일정이라도 제시해야 한다. 이재명 대표의 대표직 사퇴 문제도 당연히 포함되어야 한다. 쉬쉬할 사안이 아니다.
그런 경선 일정을 제시한 뒤 경선의 공정성과 개방성을 확보하는 방안도 당내에서 공개적으로 논의해야 한다. 그리하여 김부겸 전 국무총리, 김동연 경기도지사, 김경수 전 경남지사, 박용진 전 의원 등 잠재적 경쟁자들에게 공정한 경쟁의 장이 제공되도록 해야 한다. 2017년 박근혜 대통령 탄핵 당시에도 당은 탄핵 이전에 예비후보 등록을 허용했고, 이를 통해 역동적인 경선이 가능했다. 김경수 전 경남지사측 인사는 "민주당과 이재명 대표가 조기대선에 따른 과열만 우려하지 말고 투명하게 경선일정을 제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민주당이 유념해야 할 것은 조기 대선에서 단순한 정권 심판론에 안주하면 낭패를 볼 수 있다는 점이다. 다수 국민들은 민주당이 국가적 현안에 대한 해답과 미래 비전을 제시하길 바라고 있다.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와 적대적 양당의 대립을 극복할 수 있는 개혁적이고 민주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는 민생경제 회복, 사회 통합, 정치 개혁 등 구체적인 정책과 연계되어 추진되어야 한다. 특히 탄핵정국에서 보여준 강공 일변도의 전략에서 벗어나 협치와 통합의 리더십을 보여줄 대안도 마련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각계에서 요구하고 있는 개헌논의도 지금의 소극적인 자세에서 탈피하여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이 대표의 기득권을 지키는 것으로 오해받아서는 안된다. 오히려 이미 수명이 다한 87년 체제를 종식하고 새로운 미래를 여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해 나갈 때 민심이 돌아올 것이다.
시간이 촉박하다. 헌재의 탄핵 결정이 이르면 2월 말, 늦어도 4월 초까지 나올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23일간의 공식 선거운동 기간을 고려하면 당내 경선을 위한 시간이 매우 제한적이다. 민주당이 진정한 정권교체를 이루고자 한다면, 지금의 폐쇄적이고 경직된 시스템을 혁신하여 당내 민주주의를 회복해야 한다. 누구나 승복할 수 있는 경선이 이루어져야 경선 후 범 민주진영을 하나로 모으는 계기가 될 것이다. 이재명 대표 독식의 경선으로 몰고 간다면 당이 분열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민주당과 이 대표는 탄핵정국에서 국회 절대 다수 정당으로서 나름대로 역할을 했지만 조급하고 과도하다는 지적도 받았다. 그런 조급함과 과도함이 이 대표의 향후 대권도전과 연관이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다.
이 대표 일극체제인 민주당 내에서 자발적, 자율적으로 경선일정과 룰을 논의하고 결정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이 대표가 기득권을 내려놓고 대선 경선이 역동적이고 공정하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앞장서야 한다. 그래야만 민주당이 정권교체라는 시대정신을 구현하고,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중요한 첫걸음을 내딛게 될 것이다.
양기대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전 경기 광명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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