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석근기자] 대부업계가 인공지능을 도입한다면? 매우 까다로운 심사가 실시간으로 이뤄질 것이다. 사람이 심사할 때처럼 채무자의 수입과 직장, 거래실적과 연체기록만이 판단 대상이 아니다.
인터넷 홈페이지 보유 수, 동호회 가입정보, 범죄기록, SNS 친구 수, SNS 포스팅 주제, 대출 신청서 작성에 걸린 시간까지···. 광범한 빅데이터를 토대로 수천 개의 변수를 반영한 신용평가 모델이 생성될 수 있다.
먼 미래의 얘기가 아니다. 미국 대부업체 제스트 파이넌스가 도입한 대출심사 시스템의 신용분석 알고리즘이다. 대출 신청자의 신용도에 대한 판단과 채무 불이행 가능성을 매우 정밀하게 예측할 수 있어 리스크를 최소화할 수 있다고 한다. 신청자 입장에선 돈 빌리기가 그만큼 어려워지는 셈이다.
◆인공지능, 금융·의료·제조 등 산업 곳곳 이미 진출
알파고의 충격은 결코 바둑계에만 그치지 않을 전망이다. 알파고가 가까운 시일 내 수많은 다른 버전으로 산업계 곳곳에 침투할 것이라는 분석들 때문이다. 인공지능이 비약적인 생산성 향상을 앞세워 전문직으로 분류되는 화이트칼라 직종까지 대체할 수 있다는 전망들이 나온다.
이미 세계 도처에서 금융·의료·제조·서비스 등 여러 산업 분야에서 그 실험이 진행 중이다. 머지않아 국내에서도 이같은 추세가 일반화되면서 사회적 논란을 키울 전망이다.
알파고는 바둑에 국한된 게임용 인공지능이 아니다. 전문가들은 범용 인공지능으로서 다양한 산업용 버전으로 출시될 수 있다고 전망한다. 당장 구글의 경우 자사 데이터센터 운영에 인공지능을 적용하고 있다.
전 세계 구글 사용자들의 정보가 빅데이터로 집적된 데이터센터 에너지 사용을 최적화하는 과정에서 사람의 경우 계산상 큰 오류가 발생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인공지능을 이용할 경우 예측 오차율은 99.6%를 보인다는 것이다.
인공지능은 이미 다양한 산업에서 적용 중이다. 가장 대표적인 경우가 금융이다. 각종 시장통계, 증시 시황, 정책 추이의 역대 데이터를 시계열로 분석해 투자 수익률을 극대화하는 개념이다. 인공지능이 기존 프로그램 매매보다 몇 단계 진화해 스스로 데이터 패턴을 파악하고 학습하는 단계에 이른 것이다.
미국 리베리온 리서치의 경우 자사 헤지펀드 운용에 2007년부터 인공지능 시스템을 도입했다고 한다. 44개국의 주식, 채권, 통화 등 투자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분석하는 용도다. 인공지능 도입 후 지난해까지 투자수익률 135.1%로 타사의 3배 가량인 가운데 2008년 미국 주식시장의 붕괴, 2009년 그리스 채권 신용도 폭락 사태를 사전에 예측했다고도 한다.
인공지능은 최근 금융업계의 세계적인 핀테크 경쟁과도 맞물려 있다. 애플리케이션 형태로 모바일에 탑대해 개인화된 재무분석 서비스를 제공하는 형태다. 더 발전하면 은행 창구상의 고객 응대만이 아니라 재무관리부터 결제까지 다양한 개인 맞춤형 통합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미국 월렛AI의 경우 사용자의 소비데이터, GPS 기반 위치정보, SNS 데이터를 종합해 사용자 소비과정상 자문을 제공한다. 중국의 인터넷업체 바이두는 최근 주식시장의 빅데이터를 분석하는 앱 '스탁 마스터'를 출시하기도 했다.
금융과 함께 대표적인 전문직 영역으로 분류된 의료에서도 인공지능이 속속 접목되는 추세다. 자기공명영상(MRI) 같은 복잡한 진료영상과 함께 환자별 진료기록, 유전정보를 분석하고 최적의 치료법을 도출하는 용도다.
IBM의 인공지능 '왓슨'의 경우 환자의 생활습관과 센서를 통한 신체 측정값, 유전자 데이터를 분석해 개인별 건강관리 정보를 제공한다. 치료법 추천과 보험료 지급심사에도 적용 중이라고 한다. 국내에서도 서울아산병원과 세브란스병원 등 대형병원을 중심으로 의료 빅데이터 분석을 위한 인공지능을 연구 중이다.
자동차업계도 자율주행차 상용화 관련 인공지능 개발에 부심 중이다. 자동차가 도로상태와 교통상황, 신호체계를 스스로 인지하고 가·감속, 제동 여부를 판단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나아가 사물인터넷(IoT), 클라우드 기술을 접목해 자율주행차량들 사이의 교통통제와 안전운행이 가능한 관제시스템도 개발 중이다.
자율주행차 개발에서도 가장 선도적인 업체는 구글로 꼽힌다. 구글은 2009년부터 자율주행차 개발 관련 250여건의 특허와 400만km의 시운행 기록을 확보했다. 포드와 아마존도 차량 내 스마트카 시스템과 음성인식 인공지능을 연동시킬 계획이다. 엔진구동, 연료잔량, 주행거리 등 운행정보를 음성으로 실시간 전달받을 수 있다고 한다.
제조업 분야에서도 인공지능을 적용하기 위한 시도가 광범하게 추진 중이다. 제품 및 공법 개발, 공정과 물류 관리, 설비제어, 생산·품질 데이터 확보 등 가까운 미래에 생산 전 분야에 알파고의 딥러닝 기술이 적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세계적으로 독일과 미국을 중심으로 인공지능과 로봇기술을 적용한 스마트팩토리 기술표준 경쟁이 한창이다. 중국도 최근 인구 고령화, 3D 업종 기피 현상에 대응하기 위한 차원의 스마트팩토리 기술개발을 범국가적 차원에서 추진 중이다.
◆'일자리 소멸' vs '생산성 혁신' 대논쟁 예고
세계경제포럼(WEF)은 올해 초 인공지능과 로봇 중심의 이른바 '제4차 산업혁명' 결과로 2020년까지 세계적으로 200만개의 일자리가 연관 분야에서 새로 생겨날 것으로 전망했다. 그러나 동시에 700만개의 일자리가 사라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 가운데 사무·행정직이 3분의 2가량을 차지한다는 것이다.
지난해 영국 옥스퍼드대학은 자체 리서치를 통해 인공지능에 의해 위협받을 일자리 15개를 발표했다. 1위와 2위는 텔레마케터와 컴퓨터 입력 직업이다. 주목할 만한 점은 사라질 일자리 가운데 법률 비서, 회계사, 은행원, 경리 담당 등 전통적으로 화이트칼라로 분류되던 전문 직종들도 상당수 포함된다는 것이다.
일본 소프트뱅크의 경우 이달 초 로봇만으로 운영되는 매장을 세계 최초로 시범 운영했다. 소프트뱅크 스마트폰 신규 가입과 단말기 및 요금제 안내를 업무별로 분류해 자사 로봇 '페퍼'를 배치한 것이다. 소프트뱅크는 시급 1천500엔에 페퍼를 파견근무시키는 서비스를 발표하기도 했다.
이는 인공지능 기술의 발전과 함께 광범한 인력의 대체가 이뤄질 것이라는 우려가 흘러나오는 배경이다. 세계적인 인공지능 기술경쟁이 한창인 가운데 이른바 '노동의 미래'에 대한 해석을 둘러싼 큰 논쟁이 예상되는 이유다.
이화여대 디자인대학원 문형철 겸임교수는 "알파고 이후 인공지능은 우리 사회에 많은 이슈와 생각할 거리들이 던졌다"며 "인공지능으로 인한 일자리 문제, 특히 노동의 변화는 교육현장에서부터 소득재편까지 많은 영향을 주는 만큼 관심이 커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아스팩미래기술연구소 차원용 소장은 "인간의 뇌가 1천조개의 시냅스(신경 연결 부위)로 이뤄진 매우 복잡한 구조인 점을 감안하면 인공지능이 사람을 따라잡으려면 아직 한참 멀었다"며 "그럼에도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예고하는 만큼 관련 정책과 전략을 집중적으로 개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조석근기자 feelsogood@inews24.com
--comment--
첫 번째 댓글을 작성해 보세요.
댓글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