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그룹 주총 보니…정의선 승계작업 속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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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몽구 회장, 현대제철 이사 사임…정의선 부회장 제철 경영능력 검증 수순

[정기수기자]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현대자동차 등기이사직을 유지하는 것과 달리 현대제철 등기이사직에서는 임기를 마치고 물러났다.

현대제철은 14일 인천 파라다이스 호텔에서 열린 제49회 정기주주총회에서 임기가 끝난 정 회장 대신 강학서 부사장을 신임 사내이사로 선임했다.

정 회장이 현대제철의 등기이사직에서 물러나는 것은 2005년 3월 이사로 취임한 이후 9년 만이다. 이에 따라 현대제철은 정의선 부회장과 박승하 부회장, 우유철 사장, 강학서 부사장 체제로 재편됐다.

지난달 직접 현대제철 당진제철소 현장에 내려가 잇따르고 있는 안전사고에 대해 만전을 당부하는 등 애착을 보였던 정 회장이 이사직에서 사퇴한 데 대해 재계에서는 이례적인 행보로 받아들이고 있다.

일각에서는 아들인 정의선 현대차그룹 부회장을 위한 퇴진인 것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앞서 현대차그룹은 정 회장이 현대제철 등기이사직에서 물러나는 것에 대해 "굵직한 프로젝트가 모두 완료된 만큼 자동차 사업에 집중하기 위한 것"라고 밝힌 바 있다.

이날 현대제철 관계자 역시 "정 회장이 제3고로 완성, 현대하이스코 냉연부문 합병 등 굵직한 프로젝트를 마무리함에 따라 등기이사에서 물러나고, 그룹 최고 재무책임자를 사내이사로 신규 선임해 재무구조 개선에 주력하도록 하겠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정 회장의 이번 퇴진이 경영권 승계자인 정 부회장의 입지를 다져주기 위한 것으로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정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를 위한 그룹 내 프로젝트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셈이다.

정 부회장은 이날 열린 현대모비스 주총에서도 등기이사에 재선임됨에 따라 올해부터 현대차그룹 내에서 현대모비스을 비롯해 현대차, 기아자동차, 현대제철, 현대오토에버, 현대엔지비 등 6개 계열사의 등기이사를 맡게 된다.

부친인 정 회장(현대차, 현대모비스, 현대파워텍, 현대엔지비, 현대건설)보다 더 많은 계열사에 법적 책임을 지게 되는 셈이다.

경영권 승계는 주요 그룹 총수들이 등기이사직 사퇴를 결심하는 주된 이유 중 하나다. 이에 따라 이번 정 회장의 현대제철 등기이사 사퇴는 그룹 내 제철사업의 지휘권을 정 부회장에게 넘겨주고, 한동안 부자 간 수직분업구조 형태로 경영을 하기 위한 속내가 숨겨진 것으로 풀이된다.

재계 관계자는 "주요 계열사의 등기이사에 이름을 올리는 것은 그룹의 경영권 승계를 앞둔 후계자들에게는 중요한 관문"이라며 "지분 확보를 통해 후계구도를 어느 정도 마련한 뒤 주요 계열사의 등기이사직에 올라 경영능력을 검증받는 것이 일반적인 승계 수순"이라고 말했다.

이어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이 이번에 현대제철의 등기이사직에서 물러난 것도 이 같은 연장선상에 놓인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현재 현대차그룹의 경영권 승계에 있어 가장 큰 문제점은 그룹 내 복잡한 순환출자 고리다. 특히 유력한 후계자인 정 부회장이 그룹 내 주요 계열사들에 대한 지분율이 취약한 점이 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실제 정 부회장이 '현대모비스→현대차→기아차→현대모비스'로 이어지는 그룹 순환출자 고리를 끊고 경영권을 확보하려면 기아차가 보유한 현대모비스 지분 16.86%를 사들여야 한다. 약 5조원가량이 들어간다.

이 중 정 부회장이 지분을 가진 곳은 현대차와 기아차 뿐이다. 현대모비스와 현대제철 주식은 단 한주도 없다. 그마저도 정 부회장의 현대차 지분율은 거의 0%에 가깝고 기아차 1.75%에 불과하다. 경영권 승계를 위해서는 현대차를 위시한 이들 3개사에 대한 지배력을 높이는 것이 관건이 될 수밖에 없다.

업계에서는 여러 가지 시나리오를 내놓고 있지만 모두 막대한 자금이 소요되는 것인 만큼, 섣불리 어떤 것이 맞다고 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동안 정 부회장은 현대차그룹의 양대 축 중 자동차와 제철 중 자동차 부문만을 맡아왔다. 정 회장은 앞서 지난 2009년 기아차 등기이사직에서 물러나면서 경영권을 정 부회장에게 넘겼다. 이후 정 부회장은 기아차를 '디자인 기아'로 육성하는 등 경영능력을 대내외에 인정받았다.

이에 따라 정 회장이 현대제철 등기이사에서 물러난 것 역시 같은 맥락이라는 게 재계의 분석이다.

기아차를 이끌며 탁월한 경영능력을 검증받았던 정 부회장이 제철 부문에서도 성과를 낼 경우 후계구도 마련에도 유리하게 작용하게 된다. 경영권 승계를 위해 필요한 주요 계열사 지분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정 부회장의 입장에서는 경영능력을 검증받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한 상황이다.

재계 관계자는 "최근 현대엠코와 현대엔지니어링의 합병 등 현대차그룹이 순환출자 고리에서 벗어나 경영권을 서서히 이전하는 작업에 나서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여기에 정 회장이 현대제철 등기임원에서 물러나게 됨에 따라 정 부회장이 정주영 창업회장 때부터 숙원이었던 일관제철소 경영을 어깨에 짊어지게 된 셈"이라며 "현대제철이 고로 건설을 마무리하고 현대하이스코와의 냉연부문 사업구조조정을 마친 상황에서 투자부담이나 계열사와의 복잡한 사업조정 부담 없이 일관제철소 경영에만 매진할 수 있게 된 것"이라고 덧붙였다.

지난해 현대제철은 장기간 설비 투자에 따른 부담과 업황 부진 등이 겹쳐 매출과 이익 모두 역성장했다. 다시 말하면 정 부회장이 경영을 맡게 된 올해 실적개선을 할 가능성은 더 커진 셈이다.

재계 관계자는 "정 부회장이 현대제철의 경영을 맡아 실적이 개선될 경우 지분율을 떠나 그룹 후계자로서의 입지가 확고하게 다져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잡음없는 경영승계를 위해 계열사 합병이나 지분 증여 등 경영권 승계를 위한 구체적인 행동을 취하기보다는 그 전에 미리 정 부회장의 경영능력을 극대화해두는 것이 더 효과적인 방안"이라며 "검증된 자동차 부문의 역량 외에도 제철 부문에서 경영능력을 검증해 '준비된 CEO'로 만들겠다는 것이 정 회장과 현대차그룹의 복안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정기수기자 guyer73@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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