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수기자] 국내 최대의 완성차업체인 현대·기아자동차 노사가 본교섭을 재개했지만 결국 합의점 도출에 실패하면서 파업 양상이 파국으로 치달을 전망이다.
이번 본교섭 재개에 앞서 노조의 요구안을 놓고 노사가 현격한 의견 차를 보인데다 양측 모두 강경한 자세로 맞서고 있어 교섭 결렬 가능성이 제기된 바 있다.
이에 따라 노조의 추가 파업이 예상돼 파업 사태가 조기에 해결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이미 이틀간 부분파업 및 잔업거부로 모두 1천억원 이상의 손실이 발생한 가운데, 노조가 파업 수위를 높일 경우 천문학적인 규모의 생산 차질을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현대차는 지난 20일부터 이틀간 노조의 파업으로 인해 차량 4천185대를 만들지 못해 총 856억원의 생산차질을 입었다. 기아차 노조도 21일 각 공장에서 조별 2시간, 총 4시간의 부분파업을 개시하며 자동차 1천500대를 생산하지 못해 224억원의 생산차질액이 발생했다.
양사의 생산차질 규모를 합하면 1천80억원에 달한다.
◆16일 만에 재개된 본교섭…입장 차만 확인
22일 현대·기아차에 따르면 현대차 노사는 이날 오후 3시 울산공장 아반떼룸에서 지난 6일 중단된 임단협 본교섭을 재개했지만 접점을 찾지 못한 채 협상에 실패했다. 향후 교섭 일정도 불투명하다.
노조 관계자는 "노조가 파업을 임단협의 최종목표로 삼지 않는 만큼 투쟁 확대를 바라지 않는다"면서도 "다만 사측이 임단협에서 불성실한 모습을 보이면 투쟁수위를 높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노조는 사측에 일괄제시안 제출을 요구했지만, 사측은 요구안이 75개 조항 180개 항목으로 많은데다 수용하기 어려운 요구안이 다수 포함돼 있다는 이유로 일괄제시안을 수용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회사는 노조가 요구한 일괄 제시안을 내놓지 않았고 주요 안건에 대한 입장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노조는 곧바로 2차 쟁의대책위원회를 열어 오는 23일과 26일 주간 1·2조가 각각 4시간씩 파업하기로 결정했다. 주간 1조는 오전 11시 30분부터 파업 후 퇴근하고, 2조는 오후 8시 10분부터 파업할 예정이다. 회사가 올해 임단협 요구안을 수용할 때까지 잔업과 주말 특근도 거부키로 했다.
노조는 다만 오는 27일에는 파업하지 않고 사측과의 제 20차 본교섭을 재개키로 했다.
이날 노조가 부분파업 시간을 20·21일의 2시간에서 4시간으로 강도를 높인 것은 사측을 압박하기 위한 것이라는 게 업계의 관측이다. 사측이 강경태도를 보임에 따라 앞으로 전면파업으로 확대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올해 노조가 전면파업하면 현대차는 하루 7천여대, 기아차는 5천800여대의 생산차질이 예상된다. 업계에서는 파업이 장기화될 경우 올해 약 4조원 가량의 생산차질이 발생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현대·기아차 안팎에서는 양쪽의 입장 차로 협상이 이뤄진다고 해도 당장 사측이 일괄제시안을 내놓지는 않을 것이며 이 경우에도 노조가 곧바로 수용하지 않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노조가 부분파업에서 전면파업으로 점차 수위를 높이며 투쟁하다 추석 전 타결을 시도할 것이라는 게 업계의 관측이다.
업계 관계자는 "이날 교섭이 실패로 돌아갔지만 노사 모두 협상에 대한 의지를 확인한 만큼, 조만간 본격적인 교섭이 재개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노사의 이견이 큰 만큼 빠른 시일 내에 합의점을 도출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서로 어느 정도까지 양보해 어떻게 교섭이 이뤄질 지가 관건"이라고 덧붙였다.
◆무리한 노조 요구…생산기지 해외 이전 가능성도
현대차 노조는 올해 임단협에서 기본급 13만498원(정기호봉승급분 제외) 인상, 상여금 800%(현 750%) 지급, 퇴직금 누진제 보장, 성과급 순이익의 30% 지급, 완전 고용보장 합의서 체결, 정년 61세 연장, 대학 미진학 자녀의 취업 지원을 위한 기술취득 지원금(1천만원) 지원 등을 요구해 왔다.
지난 20~21일 이틀 동안 주간 1·2조 각 2시간씩 부분파업을 벌인 현대차 노조는 22일 사측에 성실교섭을 촉구하며 정상조업에 들어갔다.
기아차 노조도 이날은 정상근무를 실시했다. 기아차 노조 역시 전면 파업보다는 부분 파업을 진행하며 현대차의 협상 과정에 따라 강도를 높여갈 것으로 전망된다.
오는 23일에는 현대·기아차그룹사 노조 수석단 회의를 열어 현대차 노조와 함께 향후 파업 수위와 일정 등을 논의할 예정이다.
기아차 노조는 올해 임금협상에서 기본급 13만498원 인상과 정년 61세 연장, 사내하청의 정규직화, 상여금 800% 지급, 성과급 순이익의 30% 지급, 주간 2교대 안착을 위한 조·석식 무료 배식 등을 요구하고 있다.
현대·기아차는 노조의 요구안에 대해 국내·외 어려운 경기여건 등을 감안할 때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현대·기아차 관계자는 "요구사항이 워낙 많고 회사가 수용하기 힘든 내용들이어서 협상에 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사측은 일단 노조의 움직임을 살펴보면서 대응에 나서겠지만, 올해만큼은 협상에서 절대 밀리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해마다 생산 차질을 우려해 노조의 무리한 요구를 받아들여왔던 협상 관례를 이번만큼은 근절하겠다는 의지다.
파업으로 인한 생산 차질은 우선 해외 공장 가동률을 높이면서 피해를 최소화 할 방침이다.
윤여철 현대차 노무총괄 부회장 역시 최근 언론을 통해 "노조의 무리한 요구를 수용하지 않겠다"며 "파업으로 회사 손실이 커지면 당연히 해외공장 생산을 검토할 수밖에 없다"고 강경한 입장을 보이면서 노조를 자극하고 있다.
사측의 예전과 다른 이런 강경한 태도는 노조 파업에 따른 국내공장 생산 차질을 해외공장에서 만회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서 비롯된 것으로 해석된다. 현대차는 중국, 미국, 인도, 터키, 체코, 러시아, 브라질 등 7개국에 총 10개의 해외공장을 가지고 있다.
현대차의 해외생산 비중은 2008년 40%에서 2010년 52.1%로 절반을 넘었고, 지난해 56.8%에서 올해 상반기 말 기준으로는 해외생산 비중이 61.5%까지 상승했다.
올해 3~5월 현대차는 주간 2교대제 실시에 따른 노조의 주말특근 거부로 8만3천30대의 차량을 생산하지 못해 1조7천억원 정도의 손실을 입었다. 하지만 국내공장생산 차량의 판매대수는 92만2천대로 전년 하반기 대비 8만여대가 줄어든 반면, 해외공장 생산차량은 146만9천대로 27만8천대가 더 늘어났다.
현대차 노조의 특근거부 당시 국내생산물량의 상당수가 해외로 넘어간 셈이다.
이에 따라 일각에서는 현대차 노조의 파업으로 생산기지를 해외로 옮기는 산업 공동화 현상이 심화될 것이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현대차는 내년 중국 3공장에서 15만대를 추가 생산하는 등 기존 해외공장의 생산능력을 점차 확대하고 있으며 중국 4공장 건설 등 해외 생산기지 확충을 추진하고 있어 국내 생산 물량 감소는 기정 사실화되고 있다.
◆美 정치권서 공장 증설 요청도
현대·기아차의 이번 파업을 계기로 미국 정치권에서 현대차 제3공장 증설을 놓고 적극적인 유치 공세에 나섰다. 하지만 현대차는 당분간 미국공장 증설 계획이 없다는 입장이다.
업계에 따르면 한국을 방문한 네이선 딜 조지아 주지사는 지난 21일 정 회장과 비공식적으로 회동을 가졌다.
딜 주지사는 기아차에 이어 현대차 추가 공장을 조지아 주에 유치하고 싶다는 뜻을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 기아차 공장을 유치한 조지아주는 앞으로 1년 내 현대차의 미국공장 증설이 이뤄질 것으로 보고 대책 마련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에서는 딜 주지사와 정 회장의 만남이 공장 증설을 위한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2005년 앨라배마주 몽고메리에 현대차 공장 건립에 이어 2009년 조지아주 웨스트포인트에 기아차 공장을 세웠지만, 해마다 국내 파업으로 북미 물량 공급에 차질을 빚고 있다.
미국 제3공장 유치를 놓고 경쟁관계에 있는 앨라배마주의 행보도 발빠르다. 로버트 벤틀리 앨라배마 주지사도 오는 10월께 방한해 정 회장과 만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 상반기 현대차와 기아차 미국 공장 가동률은 각각 110.5%, 108.4%로 현대차그룹의 글로벌 공장 가운데 최고 수준이며 이 때문에 물량 부족 현상도 심각하다.
이에 대해 현대차는 "당분간 미국공장 증설 계획이 없다"고 밝힌 바 있다. 지난 5월 박근혜 대통령 경제사절단의 일원으로 미국을 방문한 후 귀국한 정몽구 회장도 "현재 미국공장을 증설할 계획이 없다"고 말했다.
다만 파업이 장기화 돼 손실이 커질 경우 입장이 달라질 수도 있다는 게 업계의 관측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현대차는 이미 전체 생산의 60%가량을 해외에서 생산하고 있다"며 "국내 생산 비중이 줄어들고 있는 가운데, 노조의 파업이 길어질 경우 미국 3공장이 현실화 될 가능성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정기수기자 guyer73@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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