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해는 마시라. 노키아처럼 쇠락하고 있다는 말, 절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애플의 강펀치를 맞고 흔들린 건 사실이지만 노키아처럼 혼수상태는 아니다. 노키아는 링거를 꽂은 채 대수술 중이다. 삼성전자는 자세를 바로 잡기 위해 두어 차례 머리를 흔든 것으로 충분했다. 반격을 위한 품세도 꽤나 안정돼 보인다. 회복세가 빠르다는 것은 체력이나 연습량이 충분했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노키아처럼 ‘몰빵’하는 기업도 아니다. 포트폴리오가 잘 갖춰져 있다. 반도체나 LCD 같은 부품, 휴대폰을 중심으로 한 모바일 기기, TV를 비롯한 가전. 한 쪽 실적이 안 좋으면 다른 쪽에서 보완해주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안정된 데다 기술의 융합 현상이 가속화하면서 여러 가지 부수적인 이점도 챙길 수 있다. 애플 충격이 노키아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했던 것도 반도체 등 부품 쪽에 기댄 바 크다.
삼성전자는 위기탈출 능력도 탁월하다. 1997년 외환위기를 거쳐 급성장한 게 삼성전자이고, 2008년 미국 발(發) 글로벌 금융위기를 가장 눈부시게 극복한 것도 삼성전자다. 세계 IT 업계가 애플 충격에 허우적댔던 작년에도 삼성전자는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155조 원의 매출에 17조3천억 원의 영업이익을 올렸다. 2009년에 비해 매출은 13.4%가 늘었지만 영업이익은 무려 57.6%가 뛰었다.
그러나 행과 불행은 동전의 양면이란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노키아도 명장 요르마 올릴라 체제에서 20년을 승승장구했었다.
노키아의 쇠락은 두 가지 교훈을 갖고 있다. 기업의 덩치가 커지면서 관료화하면 혁신이 떨어져 경쟁에 뒤처진다는 점이 그 하나다. 노키아뿐만 아니라 무수한 기업들이 그 선례를 남겼다. 삼성전자가 몇 차례 큰 위기를 돌파해온 사례를 볼 때 아직 그 정도까지 염려할 단계는 아니라고 봐도 될 것 같다. 그리고 그건 두 바퀴 자전거에 올라 탄 자가 넘어지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페달을 돌려야 하는 것과 같은 일이어서 새삼스럽게 교훈이라고 강조할 것까지도 없다. 그건 유기체 숙명이다.
진짜로 중요한 교훈은 한 국가의 소수 기업에 대한 의존도가 높을 때 벌어질 수 있는 재앙이다. 노키아는 핀란드 국내총생산(GDP)의 25%를 차지한다. 핀란드 경제는 노키아와 직결될 수밖에 없다. 핀란드 GDP는 2008년 4월부터 2009년 6월까지 마이너스 성장했다. 미국 발(發) 금융위기 탓이다. 그 후 성장세로 돌아섰으나 다시 2010년 두 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했다. 이는 유로 존 첫 더블 딥 징후였는데, 글로벌 위기가 지난 끝자락이어서 노키아의 탓이 아니라고 단정할 수 없다.
삼성을 노키아라 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2010년 우리 GDP는 1천172조 원이고 삼성전자 매출은 155조 원이다. 13%다. 기업의 매출과 국가의 GDP를 곧바로 비교하는 것은 개념의 특성상 적절하지 않지만 삼성이 나라에 미치는 영향을 가늠하기 위해 어느 정도 참고는 할 수 있을 것이다. 삼성전자의 시가총액 비중도 이와 비슷하고, 수출 비중은 이보다 더 높다. 삼성 그룹 계열사와 협력업체까지 합한다면 이들 비중은 더 커진다. 그러니 ‘삼성공화국’이란 말은 괜히 하는 헛말이 아니다.
다른 나라 사례를 들 것도 없다. 1997년 외환위기는 대기업 집단 중심의 경제구조가 외풍에 얼마나 취약한 것인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특히 국내 3대 재벌이었던 대우의 몰락이 가져온 상처는 되돌아보고 싶지도 않을 만큼 컸다. 우리 국민은 위정자 말을 믿고 나라를 살리자며 장롱 속에 숨겨둔 금반지를 꺼내 녹였지만 돌이켜보면 그 과실은 다시 대기업 집단에 집중됐고 그만큼 위험은 커졌다.
이명박 정부 들어 3년간 20대 대기업 집단은 자산을 55% 늘렸다. 나라를 위해 금반지를 뺐던 당신의 자산은 그 사이 얼마나 늘었는가. 5대 그룹으로 좁혀보면 자산 증가율은 더 가파르다. 59%다. 규모가 클수록 자산도 더 늘어났다는 뜻이다. 특히 5대 그룹 가운데서도 삼성이 차지하는 비중은 37%다. 국민이 고물가 전세난에 허덕일 때 위기 속에서 대기업 집단은 더 커졌고 과실은 나눠지지 않았다.
외환위기의 교훈은 물거품이 됐다. 경제 집중은 더 심해졌다. 천수답 농부가 하늘만 바라봐야 하듯, 국민도, 정부도 삼성전자가 분발해주기만을 목매어 기다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어쩌랴. 노키아를 보라. 한 기업의 영생을 바라는 건 불로초를 찾는 진시황만큼이나 부질없다. 한 기업의 성패에 나라의 운명을 거는 건 지나친 도박이다. 잘 나갈 때 이 도박의 위험성을 직시해야 한다.
/로스앤젤레스(미국)=이균성 특파원 gslee@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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