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집권한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의 완전 퇴진을 요구하는 이집트의 반정부 민주화 시위가 6일째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지난 28일(현지시간) 단행된 인터넷 및 이동통신망 차단 조치는 인류 역사에 유례가 없을 정도의 대규모로 진행된 것으로 알려졌다.
30일 미국 언론들에 따르면, 인터넷 모니터링 업체인 레네시스(Renesys)의 짐 코위 최고기술책임자(CTO)는 "카이로 시각으로 금요일 자정 인터넷 트래픽의 93%가 차단됐다"고 말했다.
◆전화 몇 통화로 인터넷 전면 차단
짐 코위는 "인터넷이 차단되기 전에 이집트의 주요 인터넷 서비스 제공업체(ISP)의 트래픽을 추적할 수 있었다"며 "이들 데이터를 보면 정부 관계자들이 단지 수분 동안 (주요 ISP들에게 인터넷을 끊어라)는 전화 몇 통을 재빠르게 돌린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단지 전화 몇 통화 만으로 나라 전체의 인터넷을 끊었다는 이야기다.
이런 조치가 가능한 것은 이집트에는 수십개의 ISP가 있지만 대부분의 군소 ISP는 세계 인터넷망에 접속할 때 텔레콤이집트 등 5개의 대형 통신사업자한테 망을 빌려 쓰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들 5개 사업자의 망만 틀어막으면 나라 전체의 인터넷을 봉쇄할 수 있게 된다.
실제로 보안업체인 아보 네트웍스의 인터넷 트래픽 그래프에 따르면, 28일 이슬람 안식일에 맞춘 대규모 시위를 앞두고 급상승하던 이집트 트래픽은 카이로 시각으로 28일 자정(뉴욕시간 27일 오후 5시)에 급격하게 곤두박질해 트래픽이 거의 완전히 죽어버린다.
레네시스의 트래픽 그래프에 따르면 주요 ISP별로 약간의 시차를 두고 각 ISP별 트래픽이 완전히 죽는 것으로 나온다.
이같은 상황은 이동통신에서도 비슷한 것으로 보인다.
보다폰 이집트 법인은 "이집트의 모든 이동전화 사업자가 지정된 지역에서 서비스를 중단하도록 요구받았다"며 "이집트 영내에서는 당국이 그런 명령을 내릴 권리를 갖고 있으며 우리로서는 그에 따를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이동전화 사업자들은 정부 요구를 따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고, ISP 또한 이와 같은 상황이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대목이다.
특히 이집트의 인터넷 차단 규모는 사상 최대인 것으로 알려졌다.
짐 코위는 "정부 명령으로 온라인이 차단된 비슷한 사례는 지금까지 2007년 버마에서 단 한 차례 밖에 없었다"며 "그러나 이때 또한 그 규모 면에서 이번 이집트와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각계 비난 쏟아져 "이집트, 신뢰 상실할 것"
차단은 쉽고 광범위했지만 그로부터 미칠 영향은 적잖을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인터넷 전문가들은 이집트가 이같은 인터넷 차단조치로부터 얼마나 빨리 회복할 수 있을 지에 대해 의구심을 갖고 있다.
짐 코위는 "이집트는 세계 인터넷 커뮤니티와 세계 경제로부터 신뢰를 잃어버릴 것"이라며 "중동 지역에서 인터넷 허브로 부상하려 했던 이집트의 노력은 상당히 뒷걸음질 칠수밖에 없다"고 내다봤다.
◆인터넷 중요성 되새기는 계기 돼
이번 이집트의 인터넷 차단은 역설적으로 세계가 소통하는데 인터넷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깨닫게 하는 계기가 됐다.
또 트위터, 페이스북, 유튜브 등과 같은 소셜 네트워크가 표현의 자유를 확산하는 데 얼마나 중요한지도 역설적으로 보여줬다.
페이스북 대변인 앤드류 노예스는 "인터넷 없는 세상은 상상할 수도 없다"며 "이집트의 정치 혼란은 이집트 국민과 정부의 문제지만, 인터넷을 차단하는 것은 세계 커뮤니티의 관심사항"이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인터넷은 이제 소통과 상거래에 필수적인 요소"라며 "그 누구도 인터넷 접속을 막을 수는 없다"고 밝혔다.
전자프론티어재단(EFF)의 활동가인 에바 갤퍼린은 "이번 상황은 인터넷을 차단할 권한을 한 사람의 손에 넘겨주는 법이 발효됐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고 설명했다.
그는 특히 "미국의 소셜 네트워크가 독재국가 국민의 민주화 목소리를 세계에 알리는 역할을 했지만, 실리콘밸리에 있는 일부 기술업체는 이들 독재정부에 국민의 목소리를 감시하고 그들에게 보복을 가하는 보안기술을 판매하고 있다"며 기술 업체의 이중성을 비판하기도 했다.
/캘리포니아(미국)=이균성 특파원 gslee@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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