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신문 3단계 발전론'이 관심의 대상이 된 적 있다. 종이신문의 기사를 그냥 퍼담는 초기 단계를 지나 인터넷 매체 특유의 스토리텔링 방식을 개발하는 쪽으로 변화 발전해 간다는 것이 이 이론의 핵심 주장이다.
미국의 인터넷 저널리즘 전문가인 존 파블릭(J. Pavlik)이 주장한 이 이론은 한 때 국내 학자들의 연구 논문에도 단골로 등장했다. 인터넷 매체들이 장기 경쟁력을 갖기 위해선 디지털 스토리텔링에 눈을 돌려야 한다는 주장 역시 이 이론에 바탕을 둔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주요 언론사들이 운영하는 인터넷신문들은 여전히 종이신문의 기사를 퍼담는 수준에서 크게 나아가지 못했다. 파블릭은 이런 편집 관행을 '셔블웨어(shovelware)'라고 불렀다.
인터넷에만 둥지를 틀고 있는 매체들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하루 하루 급박한 경쟁에 매몰돼 차별화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인터넷 저널리즘의 주도권이 포털로 넘어간 데는 이런 상황도 적지 않게 작용했다.
미국이라고 해서 사정이 크게 다르진 않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인터넷 매체가 사상 처음으로 퓰리처 상을 받았다는 뉴스는 신선하게 다가온다.
이번에 퓰리처상을 받은 프로퍼블리카는 탐사보도 전문 비영리 매체다. 뉴욕타임스, 월스트리트저널 등에서 잔뼈가 굵은 베테랑 기자 32명이 이끌고 있는 조직이다. 아직 뚜렷한 수익 모델은 없지만 탐사 보도 영역에서 새로운 장을 열고 있는 매체다.
탐사보도 부문 퓰리처 상 수상작인 'The Deadly Choices at Memorial'을 찾아 읽어봤다. 2006년 뉴올리언스 지방을 강타한 허리케인 카트리나 때문에 고립된 메모리얼 메디컬 센터 내에서 벌어진 급박한 상황을 다루는 기사였다.
필자인 셰리 핑크 기자는 이 기사에 섣불리 자신의 주장을 담지 않았다. 대신 충실하게 그 때 상황을 재현했다. 이런 스토리를 통해 중환자들을 다수 희생시킨 의사들의 판단이 과연 정당했는지를 묻고 있다. 제한된 물자와 인력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는 그들의 주장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는 것이다.
핑크 기자는 이 기사를 위해 140명 이상 인터뷰했다고 밝히고 있다. 한 편의 잘 만들어진 다큐멘터리 같은 기사는 이런 과정을 통해 탄생했다. 특히 이 기사는 텍스트 뿐 아니라 플래시를 활용한 인포그래픽까지 덧붙이면서 디지털 스토리텔링의 진수를 보여줬다.
프로퍼블리카의 퓰리처 수상작을 읽으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척박한 국내 인터넷 저널리즘 환경을 되돌아보게 됐다. 인터넷 언론의 진정한 혁신은 어디서 출발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 봤다.
인터넷 저널리즘이 한 단계 더 도약하기 위해선 '혁신'이 필요하다. 포털 의존을 탈피하기 위해 각종 소셜 미디어를 활용하는 방안도 고민해야 할 것이다. 스마트폰 시대를 대비한 모바일 전략 역시 꼭 필요하다. 혁신 없는 뉴스는 긴 생명력을 유지하기 힘들 터이기 때문이다.
이런 부분들은 지금부터라도 서둘러 준비해 나가야 할 것이다. 특히 인터넷에서만 터를 잡고 있는 매체들은 혁신을 통해 경쟁력을 키워나가는 것이 꼭 필요하다. 뉴스 시장에서도 생산 못지 않게 유통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 아무리 정교한 유통망을 깔더라도 제품이 시원찮으면 경쟁력을 갖기 힘들다. 뉴스 시장이라고 예외일 수는 없다.
그래서일까? 민감한 주제를 세련되게 다룬 프로퍼블리카의 탐사보도가 강하게 다가왔다. '나 아니면 하기 힘든 것'으로 승부하는 그들의 모습이 예사롭지 않아 보였기 때문이다.
'긴 호흡 강한 걸음'으로 한발 한발 전진해나가는 그들에게서 인터넷 저널리즘의 희망을 읽는다. 그리고 그 희망이 척박한 한국 인터넷 저널리즘 환경에도 적용될 수 있을 것이란 기대를 해 본다.
/김익현 통신미디어 부장 sini@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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