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박진영 기자] 개인정보보호법이 국내 스타트업들의 데이터 활용에 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비식별 처리된 정보의 산업적 활용도가 떨어지고 가명처리 과정도 현실적이지 않아 현장 중심의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개인정보보호위원회는 17일 오후 서울 마포구 공덕동 소재 서울창업허브에서 보호법 2차 개정안의 향후 정책방향을 논의하기 위해 '신뢰기반 데이터 경제 활성화를 위한 스타트업' 간담회를 개최했다.
이날 간담회에는 코리아스타트업포럼을 비롯해 메가존클라우드, 비바리퍼블리카(토스), 직방, 뱅크샐러드, 쏘카, 로앤컴퍼니(로톡) 등 스타트업 11개사가 참석했다.
이들은 영세한 환경 속에서 기존 제도와 함께 새로 도입되는 제도를 잘 준수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다양한 지원방안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법·제도를 실제 현장에 적용하는 과정에서 중견기업 보다 법령해석이나 판단에서 한계나 기술적 어려움이 크다는 것이다.
◆"가명정보 활용 가치 떨어져"…현장 중심의 비식별화 필요
기업들은 현재 비식별 처리되는 가명정보들이 현장에서 활용 가치가 떨어진다고 비판했다. 가명정보는 개인정보 일부를 삭제·대체하는 등 과정을 거쳐 추가 정보 없이는 개인을 특정할 수 없도록 한 것이다. 비일관적이고 형식적인 비식별처리로 인해 가명정보의 산업적 가치가 불분명하다는 지적인 것이다.
법률 서비스 플랫폼 로톡을 운영하는 로앤컴퍼니의 엄보운 이사는 "회사는 법원행정처로부터 300만건 상당의 판결문을 건당 1천원에 샀는데 변호사 등 법률전문가조차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비실명 처리가 돼 있어 서비스에 활용하기 어려웠다"면서 "일례로 판결문 본문과 이를 추가 설명하는 부속서류에서 비식별 처리 명칭이 달라 서로 연관된 내용인지 파악할 수조차 없다"고 토로했다.
그는 "비실명 처리된 판결문들이 데이터로서 활용 가치가 떨어지는데도 어쩔 수 없이 구매를 해야 하는 게 현실"이라며 "비실명 처리된 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도록 가명처리 기준을 표준화하고, 정보의 의미가 이해되도록 실질적인 가명처리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가명처리 과정을 규정하고 있는 가이드라인이 현실적이지 않다는 지적도 나왔다. 토스 운영사 비바리퍼블리카의 김성태 개인정보보호책임자(CPO)는 "수시로 활용하고 분석해야 하는 빅데이터를 필요할 때 마다 가명화하고 적정성 검토를 거친 후 폐기하고 분리하는 등의 일련의 과정을 진행하는 게 쉽지 않다"면서 "그렇다고 모든 데이터를 가명화하고 처리해서 쓰는 것도 현재 가이드라인으로는 위법"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법 개정 시행 과정에서 가명제도 개선 작업은 물론 데이터 활용 범위 등을 명확히 규정한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 CPO는 "서비스 품질 개선을 위해 사용자의 필수동의를 거친 정보를 활용하고 있었는데, 규제기관은 활용할 수 없는 정보로 판단하고 개선 요청한 경우가 있었다"면서 "정보를 어디까지 활용할 수 있는지 기준이 불분명하기 때문에 사업자 자체적으로 판단해야 하는 현실"이라고 전했다.
이같은 지적에 대해 개인정보위는 가명정보 활용 제도 및 절차를 개선하고 스타트업 대상 활용 지원을 확대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가명정보 활용 관련 기준과 절차 상 표준화·간소화를 추진하고 불분명한 부분에 대해서는 적극적인 유권해석을 통해 개선하겠다는 것이다. 또 가명정보 자체 결합(자기활용 목적) 허용을 검토하는 한편 온·오프라인 가명정보 활용 지원체계를 확립하기로 했다.
고학수 개인정보위 위원장은 "국내 벤처기업들의 총 매출액이 재계 2위 수준이고, 종사자수도 4대 기업의 총합을 웃도는 등 스타트업계가 한국 경제 성장의 한축으로 자리매김했다"면서 "가명정보 활성화를 위해서 기획재정부 등 여러 관계부처와 논의하는 한편 산업계의 의견을 토대로 다양한 개선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개인정보위는 영상·음성·텍스트정보 등 비정형데이터의 가명처리 기준을 마련하고 보안성이 확보된 환경에서 유연한 개인정보 분석·활용을 허용하는 '개인정보 안심구역'을 도입할 방침이다.
/박진영 기자(sunlight@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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