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장유미 기자] 지난해 4분기 D램·낸드플래시 시장에서 점유율을 끌어올리며 1위 자리를 지킨 삼성전자가 올해 1분기 실적에 먹구름이 드리워졌다. 글로벌 경기 침체가 몰고 온 IT 수요 부진과 고객사 재고 조정 여파로 수조원대 적자를 낼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어서다.
20일 금융조사업체 에프앤가이드가 집계한 증권사 실적 전망치(컨센서스) 결과에 따르면 1분기 삼성전자의 영업이익은 1조9천71억원에 그칠 전망이다. 지난해 1분기 영업이익(14조1천214억원)과 비교 시 86.5%나 급락한 수치로, 분기 영업이익으로 보면 2009년 1분기(5천930억원) 이후 14년 만의 최저치다.
최근 공개되는 증권사들의 전망치는 더 심각하다. 증권사들의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 실적 전망치는 최근 일주일 새 전부 대폭 하향돼 1분기에만 4조원의 영업손실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됐다. 연간 적자 전망치는 8조원이 우세하다.
현재 증권사들이 제시한 1분기 삼성전자 DS 영업손실 추정치는 최소 1조9천60억원(현대차증권), 최대 4조4천710억원(대신증권)에 이른다.
KB증권은 지난달 말까지만 해도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이 올 1분기 영업손실 2조8천억원, 연간 영업손실 4조5천억원을 낼 것으로 봤다. 하지만 한 달도 채 안돼 올 1분기 영업손실 4조원, 연간 적자 8조8천억원으로 적자 예상폭을 크게 늘렸다. 대신증권도 연간 적자가 8조1천억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유진투자증권은 지난주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의 연간 영업이익 전망치를 낮췄다. 손실 규모는 7조원이 넘을 것으로 예상했다. 이승우 유진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은 전대미문의 적자가 예상된다"며 "지난해 말 기준 반도체 재고가 29조원을 넘을 정도로 과도해 당분간 실적에 부담이 될 전망"이라고 말했다.
노근창 현대차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삼성전자 실적 악화의 중심에 있는 DS는 D램과 낸드 재고가 전 분기 대비 증가하고, 비트 출하량도 기존 전망치를 하회할 것"이라며 "파운드리·LSI도 고객사 수요 감소로 실적이 악화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이 같은 전망이 이어지자 업계에선 삼성전자가 경쟁사들처럼 조만간 인위적인 메모리 감산과 투자 축소에 나설 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일단 삼성전자는 인위적 감산에 나서지 않은 덕분에 지난해 4분기에 D램과 낸드플래시 시장에서 점유율 1위 자리를 지켰다.
실제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삼성전자의 지난해 4분기 D램 시장점유율은 40.7%로 전분기(45.1%)보다 4.4%포인트 올라 시장 영향력은 확대됐다. 그러나 매출은 55억4천만 달러로 전분기 보다 25.1% 줄었다.
삼성전자는 같은 기간 동안 낸드플래시 시장에서도 점유율 33.8%로 1위를 차지했다. 전 분기(31.4%)보다 2.4%포인트 상승했다.
반면 같은 기간 2위인 키옥시아와 3위 SK하이닉스는 낸드플래시 시장에서 각각 점유율이 19.1%, 17.1%에 그쳤다. 두 회사 모두 전분기보다 점유율이 떨어졌다. 이는 지난해 말 감산에 돌입한 여파가 컸다.
업계 관계자는 "낸드플래시 톱3 기업들 가운데 삼성전자가 나홀로 점유율이 상승한 것은 경쟁사를 따돌리는 원가 경쟁력으로부터 비롯됐다"며 "앞선 기술력을 바탕으로 고용량 낸드플래시를 주력으로 삼고 있는 만큼 경쟁사들보다 원가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었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삼성전자의 실적은 하락세를 보였다. 삼성전자의 지난해 4분기 낸드플래시 매출은 34억8천만 달러(약 4조5천570억원)로 전 분기보다 19.1% 줄었다. 키옥시아와 SK하이닉스도 같은 기간 매출이 각각 30.5%, 30.9% 급감했다. 전 세계 낸드 매출도 102억8천730만 달러(약 13조4천712억원)으로 전분기보다 25% 감소했다.
이는 고객사들이 재고 관리에 나서면서 ASP(평균판매단가)가 하락했기 때문이다. 업계는 지난해 4분기 낸드플래시 가격이 평균보다 20~25%가량 떨어진 것으로 보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D램익스체인지에 따르면 PC용 D램 범용 제품(DDR4 8Gb)의 평균 고정거래 가격은 지난달 1.81달러로 1년 전(3.41달러)의 절반 수준이다.
업계 관계자는 "올해 1분기 가격 역시 최근 1·2월 고객사들이 쌓인 재고를 소진하는 데 집중하면서 메모리 거래량이 매우 적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비롯한 메모리 제조업체들이 가격을 더 깎고 있는 상황"이라며 "1분기 적자 전망 규모가 대폭 늘어난 것은 같은 기간 메모리 출하량과 가격이 모두 예상보다 부진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고객사 재고 축소 기조가 이어지고 있음에도 삼성전자는 일단 1위의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 투자를 줄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앞서 자회사 삼성디스플레이로부터 20조원을 단기 차입한 것도 이의 일환이다. 다만 공정 전환 등을 통한 자연 감산에 대해선 얘기한 상태다.
이정배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장은 지난 15일 주주총회에서 "올해 반도체 수요가 크게 감소할 것"이라면서도 "필수 R&D 투자, 클린룸 확보 등 미래투자는 지속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설비 투자는 시황 변동성을 고려해 탄력적으로 운영할 것"이라며 "제품 라인업 효율화, 라인 설비 호환성 강화 등 투자 효율 제고와 체질 개선 활동도 강화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메모리 반도체 2위 기업인 SK하이닉스도 상황이 심상치 않다. 지난달까지는 올 1분기 영업손실 2조원대, 연간 적자 7조원대 전망이 우세했지만, 최근 1주일 사이 제시된 전망치는 올 1분기 적자 3조~4조원 이상, 연간 적자 11조원가량 일 것으로 제시됐다.
앞서 SK하이닉스는 이미 작년 4분기에 영업손실 1조7천12억원을 기록하며 2012년 3분기 이후 10년 만에 분기 적자로 전환했다.
업계 관계자는 "사업이 분산된 삼성전자와 달리 SK하이닉스는 전체 매출에서 메모리 비중이 90%가 넘어 업황 악화로 받는 충격이 더 큰 편"이라며 "북미 서버 업체들의 보수적 재고 정책 지속에 따른 메모리 반도체 구매 수요부진 여파로 D램, 낸드 출하 감소와 가격 하락이 동시에 발생해 상반기 적자 규모 확대가 불가피하다"고 분석했다.
이에 SK하이닉스는 반도체 한파에 대응해 감산과 투자 축소에 나섰다. 앞서 올해 투자 규모를 작년보다 50% 이상 감축하고 수익성 낮은 제품을 중심으로 생산량을 축소하겠다고 작년 3분기 컨퍼런스콜에서 밝힌 상태다. 또 작년 4분기부터 중국 우시 등 주요 생산라인에서 웨이퍼 투입량을 줄였고, 올해 D램과 낸드 웨이퍼 생산량도 작년 대비 축소하기로 했다.
업계는 감산을 선언한 SK하이닉스가 올 상반기까지 웨이퍼(반도체 기판) 투입량을 20~30%가량 줄일 것으로 보고 있다. 삼성전자 역시 생산라인 최적화(장비 재배치) 등을 통해 생산량을 조절, 올해 D램 공급량의 8~10%를 줄일 것으로 봤다.
업계 관계자는 "두 회사의 실적 전망치가 1분기 실적 발표 전후까지 계속 하락할 것"이라며 "고객사들의 1분기 강도 높은 재고 조정과 공급 초과 규모 축소로 2분기부터는 수급이 다소 개선돼 현재 원가에 근접한 D램과 낸드플래시 가격 하락세도 올 2분기부터는 둔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동원 KB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삼성전자의 간접적 감산과 SK하이닉스 등 경쟁사들의 가동률 조정은 하반기부터 메모리 수급 개선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며 "삼성전자 반도체 적자는 상반기에 확대된 후 3분기부터 줄어들기 시작하고, SK하이닉스의 영업적자는 1분기를 기점으로 점차 줄어들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장유미 기자(sweet@inews24.com)
--comment--
첫 번째 댓글을 작성해 보세요.
댓글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