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VB 파산에 숨죽인 국내 금융시장 폭풍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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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파산 규모 2위…국내 중소형 은행 '촉각'

[아이뉴스24 박은경 기자] 고금리와 뱅크런(대량 예금 인출) 사태로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이 파산하면서 국내 금융시장도 폭풍 전야다. 미국발 뱅크런 사태가 국내 중소형 은행으로 번져 금융 시스템을 흔들 수 있어서다.

지난해 수신이 급증해 '역마진'을 기록한 저축은행을 비롯한 2금융권을 약한 고리로 지적한다. SVB 주식이나 발행 채권에 투자한 경우 투자 손실이 불가피해졌다. 국내 금융기관이 미국발 뱅크런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이유다.

미 캘리포니아주 금융보호혁신국은 현지 시간으로 지난 10일 불충분한 유동성과 지급불능을 이유로 SVB를 폐쇄하고, 미 연방예금보험공사(FDIC)를 파산 관재인으로 임명했다. FDIC는 곧 신규법인 '샌타클래라 예금보험국립은행(DINB)'을 세워 SVB의 기존 예금을 모두 이전하고, SVB 보유 자산 매각을 추진하기로 했다. SVB의 파산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워싱턴뮤추얼 붕괴 이후 최대 규모다.

미국 연방예금보험공사(FDIC)는 지난 10일(현지시간) SVB를 폐쇄하고 보유 예금을 직접 관리하기로 했다. [사진=SVB 공식 트위터]
미국 연방예금보험공사(FDIC)는 지난 10일(현지시간) SVB를 폐쇄하고 보유 예금을 직접 관리하기로 했다. [사진=SVB 공식 트위터]

◆ 예금으로 성장한 SVB, 뱅크런에 파산

SVB는 고객 예금을 기반으로 급성장해왔지만, 금리 급등으로 돈줄이 마른 기업들이 예금을 인출하면서 파산했다. 지난해 말 SVB 총자산은 2천90억 달러로 전년 말(1천160억 달러)보다 930억 달러 증가했다. 1년 만에 자산이 두 배 가까이 증가하는 초고속 성장해 미국에서 16번째로 큰 대출 기관이 됐다.

초고속 성장 뒤에는 주 고객층이었던 스타트업과 벤처캐피탈의 예금이 있었다. SVB는 예금이 몰려 유동성이 풍부해지자 미국 국채(UST)와 에이전시 채권(MBS)에 투자해왔다. SVB 총자산 중 만기보유증권(채권)의 비중은 14.4%에서 46.5%로 급등했다.

그런데 연준의 긴축으로 금리가 급격히 상승하면서 주 고객인 벤처캐피탈과 신생 기업들의 유동성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차입비용이 커진 이들 기업은 돈줄이 마르기 시작했고, SVB에 예치한 예금을 인출해 유동성을 메웠다. SVB는 결국 보유 채권을 헐값에 팔아야 했다. SVB는 지난 8일 예금 지급을 위해 미 국채로 구성된 매도가능증권(AFS·만기 전 매도 의도로 매수한 채권과 주식) 상당량을 팔면서 18억 달러 규모의 손실을 봤다.

불안해진 기업들이 예금 대량 인출을 시도했고, 하루 만에 420억 달러(약 55조6천억원) 인출 시도가 있었다. 결국 다음 날 오전 미 캘리포니아주 금융보호혁신국은 불충분한 유동성과 지급불능을 이유로 SVB를 폐쇄했다. 1983년 문을 열고 신생 기업들의 금융기관으로 우뚝 서기까지 40년이 걸렸지만, 파산하는 데는 36시간밖에 걸리지 않았다.

◆ 예금 급증한 저축은행·상호금융 '경고'

국내 금융시장도 긴장하고 있다. 미 FDIC가 예금자보호조치를 시행하면서 충격을 줄여나가고 있지만, 예금에 기반해 급성장한 신용협동조합·상호금융·저축은행들이 긴장하고 있다.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말 기준 신협에 몰린 수신 잔액은 총 123조 원으로 6개월 만에 6.79%(8조2천621억 원) 급증했다. 저축은행과 상호금융 수신 잔액도 지난해 상반기 말보다 각각 3.2%씩 늘어난 약 120조원, 459조원에 달했다. 같은 기간 전체 비은행 금융기관의 수신 잔액 상승률(0.95%)을 훌쩍 뛰어넘는 수치다.

보호해야 할 예금은 많이 늘어났지만, 대출은 줄어 역마진이 우려가 커지고 있다. 지난달 저축은행 79곳 중 59곳은 주택담보대출을 시행하지 않았다. 중·저신용 대출을 취급하지 않은 곳도 12곳이다. 상호금융에서도 올해 들어 가계대출이 5조9천억원 감소했다.

대출을 급격히 줄인 이유는 수익성 악화를 우려해서다. 지난해 예금금리는 2%대에서 6%대로 약 3배 높아졌으나 대출 금리는 법정 최고 금리(20%) 제한으로 올리지 못해 수익이 나지 않는다는 판단에서다.

송기종 나이스신용평가 금융평가본부금융평가3실장은 "SVB의 예금지불정지 사태는 예수금의 급속한 증가와 높은 기업 거액예금 비중, 금리 상승기의 잘못된 채권 듀레이션 전략이 결합하면서 발생한 것"이라며 "다소 이례적인 사례이나, 우리나라 금융시장에서도 유사한 맥락의 상황이 전개될 가능성은 있다"고 경고했다.

◆ 국민연금에 이어 금융사도 SVB 지분 있나

관건은 우리나라 금융회사의 SVB 지분 보유 여부다. 국민연금은 SVB 그룹 주식 10만주·300억원을 보유한 것으로 확인됐다. 국내 금융사의 추가 보유나 채권 투자, 개인들에게 판매한 펀드 등에 관련 주식이나 채권이 편입돼 있는지가 일차적인 관심이다.

현재 정부에선 국내 금융시장에 미칠 충격은 제한적인 것으로 보고 있다. 한국은행은 이날 이승헌 부총재 주재로 '시장 상황 점검회의'를 열고 "SVB 사태로 국제 금융시장 변동성이 확대됐지만, 현재로선 금융권 전반의 시스템 리스크로 확산할 가능성은 크지 않은 것으로 판단한다"고 밝혔다.

/박은경 기자(mylife1440@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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