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장유미 기자]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지난해 각각 300조원, 80조원을 돌파하는 사상 최대 매출을 기록했음에도 불구하고 한숨을 내쉬고 있다. 글로벌 소비경기 둔화와 인플레이션 영향으로 같은 해 4분기 실적 부진이 시장 기대치보다 훨씬 더 큰 탓이다. 또 올해 실적 역시 더 추락할 것이란 예고가 나오면서 최근 '비상 경영'에 돌입하는 등 긴장감을 늦추지 않는 모양새다.
6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삼성전자의 지난해 4분기 연결 기준 영업이익은 4조3천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69.0% 감소한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 삼성전자의 분기 영업이익이 4조원 대를 기록한 것은 2014년 3분기(4조600억원) 이후 8년 만이다. 같은 기간 매출액은 70조원으로 8.58% 줄었다.
'반도체 혹한기'를 충분히 반영했다던 시장 추정치보다도 훨씬 못 미쳐 '어닝쇼크'를 기록했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삼성전자 4분기 영업이익 컨센서스(증권사 전망치 평균)는 6조9천254억원이었으나, 실제로는 2조6천억원이나 하회했다. 매출도 컨센서스(72조7천531억원)를 약 2조7천억원 밑돌았다.
그러나 연간 매출은 역대급 실적을 달성했다. 지난해 매출은 301조7천667억원을 기록하며 사상 처음으로 연매출 300조원을 돌파했다. 지난 2021년 279조6천48억원으로 역대 최대 매출 기록을 기록한 지 불과 1년 만이다. 삼성전자의 매출 300조원 돌파는 창립 이래 최대 성적이자 국내 기업사에도 처음 있는 일이다.
하지만 영업이익 60조원 돌파는 결국 이뤄지지 않아 '300·60클럽' 진입에는 실패했다. 시장에선 지난해 상반기까지만 해도 삼성전자가 국내 기업 중 처음으로 매출액 300억원, 영업이익 60조원을 넘을 수 있을 것으로 봤으나, 지난해 3분기부터 소비 침체 여파로 전 사업 부문이 부진한 실적을 기록한 탓에 결국 전년 동기 대비 16% 감소한 43조3천700억원에 그쳤다. 다만 지난해 영업이익은 2018년(58조8천900억원), 2017년(53조6천500억원), 2021년(51조6천339억원)에 이어 역대 4번째로 높은 기록이다.
연간 실적 역시 시장 추정치 보다는 낮았다.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삼성전자의 지난해 매출액은 304조7천210억원, 영업이익은 45조9천811억원으로 추정됐다. 영업이익은 추정치보다 5.7%가량 저조했다.
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는 해외 매출 비중이 80% 이상이어서 원·달러 환율 하락도 실적에 부정적으로 작용했다"며 "달러로 환산한 4분기 삼성전자 매출은 532억 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18% 줄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 수요 부진·원가 압박에 흔들린 삼성전자…"총체적 난국"
상황이 이렇자 삼성전자는 이례적으로 이날 '설명 자료'를 함께 냈다. 부진의 강도가 시장의 예상을 훨씬 뛰어 넘은 탓이다. 자료에선 실적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사업별 실적 하락 요인을 상세하게 안내했다.
삼성전자는 "글로벌 경기침체 가능성 등 대외환경 불확실성이 지속되는 가운데 메모리 사업이 수요 부진으로 실적이 크게 하락했다"며 "스마트폰 판매도 둔화되며 전사 실적이 전분기 대비 큰 폭으로 하락했다"고 밝혔다.
이날 사업 부문별 실적이 공개되진 않았으나, 특히 실적 '효자'였던 반도체의 부진이 뼈아팠다. 시장에선 삼성전자의 지난해 4분기 반도체 사업 영업이익이 1조5천억원 수준에 그쳤을 것으로 봤다. 특히 골드만삭스는 반도체 부문 예상 영업이익을 기존 2조6천억원에서 1조5천억원으로 42.3% 줄였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8조8천억원) 대비 83% 급감한 수준이다.
이에 대해 삼성전자는 "메모리 사업은 글로벌 고금리 상황 지속과 경기 침체 전망에 따른 소비심리 위축 우려로 고객사들이 긴축재정 기조를 강화했다"며 "이에 전반적인 재고조정 영향으로 4분기 구매 수요가 예상보다 대폭 감소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공급사들의 재고 증가에 따른 재고소진 압박 심화로 가격이 분기 중 지속적으로 하락해 가격 하락폭도 당초 전망 대비 확대됐다"며 "이로 인해 실적이 큰 폭으로 하락했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시장조사업체 D램익스체인지에 따르면 10월 D램(PC향 범용제품 기준)과 낸드플래시 고정거래가격은 전월 대비 각각 22.46%, 3.74% 떨어졌다. 11월에는 보합세를 보이다 12월에 다시 하락했다.
수요 감소 탓에 재고자산도 급증했다. 지난해 3분기 말 기준 재고자산은 57조3천198억원으로 전년 말보다 38.5% 늘었다.
모바일 사업도 실적이 크게 하락해 지난해 4분기에 분기 기준 최저 매출을 거둔 것으로 분석됐다. 글로벌 경기 침체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중국 코로나 봉쇄 등에 따른 수요 부진 탓이다.
시장조사업체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지난해 글로벌 스마트폰 출하량은 전년 대비 11% 감소한 12억4천만 대를 기록한 것으로 파악됐다. 당초 전망을 크게 밑도는 수준이다.
이로 인해 시장에선 삼성전자에서 스마트폰을 담당하는 MX와 네트워크 사업부(구 IM)가 지난해 4분기 동안 1조원대 후반의 영업이익을 거둔 것으로 관측했다. 전년 동기보다 1조원 내외 감소한 수치다.
이는 원재료 가격 상승 영향도 컸다. 삼성전자의 지난해 3분기 분기보고서를 보면 스마트폰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 가격은 전년 대비 80% 상승한 것으로 집계됐다. 카메라 모듈은 전년보다 10% 올랐다.
이승우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스마트폰 출하량은 기대와 달리 한 자리 중반 감소하고, 평균판매가격(ASP)도 두 자리 하락이 예상된다"며 "결과적으로 지난해 4분기 MX 매출은 2022년 최저치를 기록하고, 마진도 한 자릿수 중후반 수준까지 악화할 전망"이라고 말했다.
글로벌 경기 침체 여파로 가전 사업의 어려움은 더 컸다. 지난해 4분기 생활가전·TV를 담당하는 CE 사업부는 2천~3천억원대의 영업이익을 올린 것으로 관측된다. 전년과 비교하면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으로, 블랙프라이데이 등 특수도 제대로 누리지 못한 것으로 파악됐다.
삼성전자는 "모바일경험(MX)의 경우도 매크로 이슈 지속에 따른 수요 약세로 스마트폰 판매·매출이 줄면서 이익이 감소했다"며 "가전 사업은 시장 수요 부진과 원가 부담이 지속되며 수익성이 악화됐다"고 말했다.
◆ '연매출 80조' 시대 연 LG전자…TV·가전 대신 전장이 '효자'
LG전자도 지난해 80조원이 넘는 매출 달성으로 사상 최대 연간 매출 기록을 세웠지만 마냥 웃지 못했다. 주력 사업인 가전·TV의 수요 위축 여파로 작년 4분기 영업이익이 전년보다 10분의 1 수준으로 쪼그라들었기 때문이다.
LG전자의 지난해 4분기 영업이익은 655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무려 91.2%나 감소한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 같은 기간 매출액은 21조8천597원으로 5.2% 늘었다. LG전자의 분기 영업이익이 1천억원대에 못 미친 것은 2018년 4분기 이후 15분기만이다.
이는 시장 전망치에 한참 못 미치는 수치다. LG전자의 작년 4분기 영업이익 컨센서스는 4천207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37.9%가량 줄었을 것으로 예상됐다. 실제 영업이익은 전망치의 7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매출도 22조2천993억원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됐으나, 한참 미치지 못했다.
LG전자의 부진은 주력 사업 부문의 수요 침체 여파가 주효했다. 특히 TV 시장이 쪼그라든 것이 실적 악화를 이끌었다. 시장조사업체 옴디아에 따르면 글로벌 TV 출하량은 지난 2020년 2억2천535만 대로 정점을 찍은 뒤 2021년 2억1천354만 대, 지난해 2억452만 대로 감소세를 기록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 탓에 TV 사업은 지난해 2분기 이래 3분기 연속 적자라는 초유의 사태를 맞았다. TV 사업을 맡은 HE 부문이 2분기 이상 적자를 낸 것은 지난 2015년(1~2분기) 이후 7년 만이다.
이에 대해 LG전자는 "글로벌 TV 수요가 감소하는 상황 속에서 유럽 지역의 지정학적 리스크 지속에 따른 소비심리 위축 등으로 성수기 프리미엄 TV 판매가 둔화됐다"며 "경쟁 대응을 위한 마케팅 비용 증가 및 유통재고 수준 정상화를 위한 판매 촉진 비용 증가로 전 분기 대비 적자 규모 증가했다"고 말했다.
가전 역시 상황은 비슷하다. 수요가 회복되지 않는 상황에 원자재 가격과 물류비가 여전히 높은 수준을 유지했던 탓이다. 또 공급망 차질에 대비하기 위해 원재료를 적극 확보했지만, 수요 침체가 지속되면서 연말 대형 쇼핑 특수를 제대로 누리지 못한 데다 재고가 급증한 것도 영향이 컸다. LG전자의 지난해 3분기 말 기준 재고자산은 11조2천701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2% 늘어났다.
이에 생활가전 사업을 담당하는 H&A사업본부는 올해 4분기에 적자를 기록했을 것으로 관측됐으나, 다행히 소폭 흑자로 간신히 위기를 넘겼다. 앞서 지난해 3분기에는 영업이익이 지난해 동기(5천16억원)보다 55% 떨어진 2천283억원을 기록한 바 있다.
LG전자는 "가전사업은 주요국의 인플레이션 지속 등 거시경제 상황 악화에 따른 가전수요 감소와 해외 시장에서의 경쟁 심화 영향으로 전년 대비 매출이 소폭 감소했다"며 "마케팅 비용 증가 영향으로 전년 동기 대비 흑자 규모도 감소했다"고 밝혔다.
반면 '만년 적자'로 불리던 전장(자동차 전기장치) 사업은 '실적 효자'로 새롭게 급부상했다. 지난 4분기 영업이익 컨센서스는 500억원가량으로, 3분기 연속 흑자다. 이에 따라 전장 사업은 연간 기준 흑자도 2015년(50억원) 이후 7년 만에 달성한 것으로 보인다.
LG전자는 "완성차 업체의 안정적인 주문 물량 유지, 주요 원재료 관련 효율적인 공급망 관리를 통해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크게 늘었고 수익성도 흑자를 유지했다"며 "다만 신규 생산법인 초기 운영비가 늘고 올해 확보된 대규모 신규 수주 물량에 대한 제품 개발비가 늘어난 탓에 4분기 흑자 규모는 지난해 3분기보다 줄었다"고 설명했다.
◆ 삼성 반도체 1분기 '적자' 예고…LG, TV 적자 행진 이어질 듯
올해 역시 삼성전자, LG전자는 가시밭길을 예고하고 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체감되기 시작한 IT 제품의 수요 급감이 올해 상반기까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돼서다.
두 회사의 실적 전망도 암울하다. 삼성전자의 경우 주력 제품인 메모리반도체 시장의 '혹한기'가 적어도 올 상반기까지 이어질 것으로 예상돼 분위기가 좋지 않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는 올해 1분기 PC D램 범용제품의 고정거래가격이 지난해 4분기보다 15~20% 하락할 것으로 관측했다. 수출입은행은 연간 기준 D램 평균 가격이 전년 대비 35%, 낸드플래시 평균 가격은 11% 하락할 것으로 내다봤다.
최근 2년간 호황기를 누렸던 파운드리 시장 역시 어두운 전망이 이어지고 있다는 점도 문제다. 스마트폰, PC, TV 등에 들어가는 칩 수요가 감소하면서 파운드리 업체에 쇄도하던 위탁 생산 주문이 줄어들고 있어서다. 이에 재작년 100%에 달한 전 세계 파운드리 공장의 평균 가동률은 지난해 4분기 86%로 떨어졌다. 올해도 PC 출하량은 5~10% 감소하고 스마트폰 출하는 크게 늘지 않을 것이란 게 업계의 중론이다.
올해 전 세계 반도체 시장 전망도 암울하다. 세계반도체시장통계기구(WSTS)에 따르면 올해 글로벌 반도체 매출은 5천565억 달러(약 706조5천880억원)로 지난해(5천801억달러) 대비 4.1% 감소할 것으로 조사됐다.
이 같은 상황 탓에 대신증권은 최근 보고서에서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 부문 올해 1분기 영업이익 추정치를 695억원 적자로 예상했다. 하이투자증권은 280억원 적자, BNK투자증권은 무려 2천900억원가량의 적자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했다. 삼성전자가 반도체 부문에서 적자를 기록하게 되면 지난 2009년 1분기(6천700억원 적자) 이후 14년 만이다.
삼성전자 내부에서도 올해 반도체 사업의 영업이익 목표를 지난해 절반 수준으로 잡았다. 지난해 삼성전자 DS부문 영업이익은 25조4천509억원(증권사 추정치 평균)으로 추정된다. 일각에선 삼성전자가 경쟁사들처럼 감산에 동참할 가능성도 있다고 보고 있다. SK하이닉스, 마이크론, 키옥시아 등은 지난해 4분기에 공급 축소에 나선 바 있다. 다만 삼성전자는 앞서 반도체 업황이 악화되도 인위적 감산을 하지 않겠다고 밝혔던 상태다.
업계 관계자는 "반도체 업황 회복을 앞당길 수 있는 핵심 요인은 삼성전자의 감산 동참 여부"라며 "세계 1위 생산업체인 삼성전자가 공급량을 크게 줄여야 수급이 안정되고 가격도 하락세를 멈출 수 있다"고 봤다.
이어 "메모리반도체 가격이 예상보다 크게 하락해 손익분기점 수준까지 떨어졌다"며 "삼성전자가 공급 전략을 수정할 가능성이 커졌다"고 덧붙였다.
삼성전자는 모바일, 가전·TV 등 사업부문에서도 판매 부진에 빠져 재고 부담이 커지는 등 재무구조에 부담이 실리고 있다. 이에 올해 실적 컨센서스는 매출 291조8천824억원, 영업이익 28조2천709억원으로 전년 대비 각각 3.3%, 34.8%씩 감소할 것으로 예상됐다. 영업이익률 전망치는 사상 초유인 10%까지 떨어질 수도 있을 것으로 증권가는 보고 있다.
도현우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삼성전자의 실적 부진은 올해 1분기에도 지속될 전망"이라며 "메모리 가격 하락세가 심화되며 금융위기 이후 처음으로 반도체 부문에서 분기 적자를 기록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상대적으로 투자 여력이 있는 삼성전자도 반도체 부문 대규모 적자를 기록하며 올해 투자를 축소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LG전자도 주력 사업 부문인 가전·TV 시장의 수요 침체가 우려되는 만큼 상황이 좋지 않다. 고물가와 고금리 상황에 소비를 늘리기 쉽지 않은 데다 전통적으로 상반기가 가전·TV 업계의 비성수기여서 사업 환경의 어려움이 클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TV 사업을 맡은 HE부문은 지난해 연간 적자를 기록한 후 올해 상반기에도 적자 행진을 이어갈 가능성이 높다. LG전자의 올해 실적 컨센서스는 매출액 88조725억원, 영업이익 4조535억원으로 전망됐다.
이 같은 분위기 탓에 삼성전자와 LG전자는 부진 장기화에 대비하고 나섰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말부터 실질적인 비상 경영 체계에 돌입해 내부 비용 절감에 나서고 있다. 전사적으로 해외 출장, 소모품 비용 등 불필요한 경비를 절감하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지난 2일 저녁 시무식에서 삼성그룹 계열사 사장단 40여 명을 서초사옥으로 불러 모아 '비상 경영' 의지를 다지기도 했다.
LG전자는 경기 악화에 선제 대응하기 위해 각 사업부문 및 본사 조직 구성원 일부가 참여하는 '워룸' 태스크포스를 조직해 운영하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반도체 업황이나 소비 심리 등 실적에 영향을 미치는 외부 변수가 워낙 커 비상 경영 체제가 언제 끝날지 장담할 수 없다"면서도 "다만 원자재 가격과 원·달러 환율이 최근 안정세를 보이면서 원재료·물류비 등 생산 원가 부담이 완화되고 있다는 점은 긍정적"이라고 밝혔다.
이어 "두 회사의 올해 실적 악화는 기정사실화되고 있는 분위기"라며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최근 각각 주력하고 있는 파운드리, 전장 사업으로 기존 사업의 부진을 올해 얼마나 상쇄할 수 있을 지가 관건"이라고 덧붙였다.
/장유미 기자(sweet@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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