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구서윤 기자] #. A씨는 몇 년째 사용 중인 디올 립스틱을 지난해 말 티몬에서 구매했다. 백화점보다 1만5천원 정도 저렴한 가격에 매력을 느꼈다. 몇 달 후 제품을 사용 중 평소에 쓰던 제품에서는 느껴지지 않던 박하향이 나는 것을 이상하게 여겨 디올 매장 직원에게 문의한 결과, 정품이 아니라는 답변을 들었다. 포장부터 케이스가 모두 같아서 평소에 이 제품을 쓰지 않던 소비자라면 감쪽같이 속을 법했다.
#. B씨는 위메프에서 무선이어폰인 에어팟 프로 3세대를 15만원 대에 구매했다. 정가는 35만9천원이기에 살짝 의심이 들긴 했지만 판매자의 '정품 보장'을 철석같이 믿었다.
위조품 판매가 수년째 오픈마켓의 아픈 손가락으로 지적되고 있지만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과거 의류와 신발 등이 주로 위조품으로 둔갑해 판매됐다면 이제는 화장품, 전자제품에 이르기까지 전 영역에서 활개치고 있다.
◆"정품이라고 해서 구매했더니 이상하네"…정교해지는 짝퉁 판매
오픈마켓은 판매자와 구매자를 중개하는 역할을 하는 쇼핑몰로, 오픈마켓 사업자가 판을 깔아두면 수많은 판매 업체들이 입점해 물건을 판매하는 구조다. 쿠팡, 네이버쇼핑, 11번가, G마켓, 옥션, 티몬, 위메프 등이 대표적인 오픈마켓이다.
소비자들은 오픈마켓에서 가격 비교를 하며 제품을 구매하지만, 오픈마켓 사업자가 모든 제품을 검수하지 못하는 구조 탓에 위조품 문제는 지속적으로 불거지고 있다. 판매자들은 정품의 상품 소개 페이지를 그대로 가져와서 그럴듯하게 꾸미고, 정품임을 강조하는 등 이른바 위조품 판매의 온상이 되어가는 모습이다.
B씨가 구매한 에어팟 프로 3세대의 경우 위메프 판매 페이지에서는 애플의 정품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판매자는 상세 페이지를 통해 '100% 정품만을 취급한다. 애플 홈페이지상에서 시리얼 번호로 즉시 정품 확인이 가능하다'라는 문구를 강조하고 있다. B씨는 이를 믿고 구매했고, 물건을 받은 후 설명대로 제품의 시리얼 번호를 입력하자 정품이 맞다고 나타났다. 하지만 사용할수록 성능에 의심이 들었고, 구매자들이 모두 동일한 시리얼 번호를 안내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판매자가 하나의 정품 시리얼 번호를 그대로 복제해 위조품으로 판매한 것이다.
현재도 온라인에서 동일 제품을 검색해 보면, 10만원 초반대부터 가격이 다양하게 형성되어 있다. 29만원 대의 가격임에도 가품으로 판명 난 사례도 있다.
오픈마켓 업체들은 정기적으로 위조품을 모니터링하고, 대책 마련에 힘쓰고 있다고 하지만 사후 대책은 부실하다.
그중 위메프는 '위조품 200% 보상제'를 운영하고 있다. 특정 브랜드 제품이 감정 결과 위조품으로 확인될 경우 상품가 100%에 추가로 100%를 더 보상해주는 제도다. 하지만 반품 기한이 90일로 정해져 있는 탓에 90일 이후 가품임을 파악했을 경우 초기 결제액만 보상받을 수 있다.
B씨는 "업체들은 최저가를 내걸고 경쟁하고 있고, 소비자는 조금이라도 싸게 사려고 온라인에서 쇼핑하는데 막상 낮은 가격의 제품을 발견하면 의심부터 하고 보게 되어 씁쓸하다"라며 "200% 보상제를 보고, 신뢰감이 들어 제품을 구매했는데 가짜를 판매한 것 자체 보다 기간에 신경을 쓰는 것이 납득이 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위조품 날로 늘어가지만, 오픈마켓은 속수무책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온라인 전자상거래 시장이 급성장하면서 위조상품 역시 크게 늘었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황운하 의원실이 특허청으로 제출받은 '국내 주요 온라인 쇼핑몰 위조상품 유통적발 품목' 자료에 따르면, 2019년부터 올해 8월까지 41만4천718점이 적발됐다. 위조상품 유통적발 상위 품목은 신발(10만6천824점), 전자제품( 8만3천284점), 의류(7만9천740점), 가방(5만4천456점) 등이었다.
또한 쇼핑몰별 위조상품 유통적발 현황을 보면 네이버 스마트스토어가 18만2천580점으로 가장 많았고, 쿠팡(12만2천512점), 위메프(6만6천376점), 인터파크(2만3천22점), 11번가(9천483점), 지마켓(9천18점), 티몬(1천52점), 옥션(674점) 뒤를 이었다. 하지만 신고되지 않고 여전히 판매 중인 제품은 포함되지 않은 수치여서 실제 유통 중인 위조품은 더욱 많을 것으로 예측된다.
문제는 다수의 소비자가 가품인지 모른 채 제품을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소비자원이 황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를 보면, 국내 주요 온라인 쇼핑몰 위조상품 판매 관련 소비자 피해구제 접수 현황은 122건에 불과하다. 가품으로 의심되어 환불을 요청할 경우, 비용을 들여 가품 판정서를 제시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A씨 역시 처음에는 가품인지 모른 상태로 제품을 이용했다. 몇 달이 지나 가품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구매했던 티몬 페이지에 접속하자 '본 상품은 잠시 판매가 중지되었습니다. 이미 구매하신 회원님의 주문은 유효합니다.'라는 문구가 나타났다. 판매된 제품이 가품이라는 정보, 가품에 대한 보상 이야기는 찾아볼 수 없었다. 이 제품은 1천822개가 판매됐다고 나온다.
A씨는 "다른 것도 아니고 입술에 바르는 제품인데, 어떤 원료가 들어갔는지 모른 채로 발라왔다는 사실과 고가품이 아닌데도 짝퉁으로 둔갑한다는 것이 당황스럽다"며 "이 제품을 처음 사용하는 소비자는 모르고 넘어갈 수도 있을 것 같다"라고 말했다.
티몬에 문의하자 "구매 후 90일이 지난 제품이 대해선 환불이 어렵다"며 "가품이 의심되어 환불을 요청할 경우에도 소비자가 직접 전문 업체에 의뢰해 가품 판정서를 받아와야 가능하다"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MD를 통해 검수 후 판매하는 제품이 있고, 오픈마켓 형태로 판매하는 제품이 있는데 오픈마켓 상품의 경우 사전 검수가 어려운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위조품 판매는 오픈마켓의 신뢰도와도 연결되는 문제이기에 사업자들은 판매 제품에 대해 위조품 모니터링을 하고 있지만 온라인에서 판매 중인 수많은 제품들을 일일이 검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구매자로부터 신고가 접수하면 조사를 통해 판매자에게 제재를 가하는 정도다. 하지만 특정 판매자의 계정을 차단해 재가입을 막는다고 해도 또 다른 사업자로 등록해 판매하는 것까지는 막기 어렵다.
업계 관계자는 "한 판매자가 가품을 판매하다가 신고받고 사라져도, 또 다른 사업자로 둔갑해 판매를 이어나가기 때문에 위조품을 미리 색출하기 어렵다"며 "대형 플랫폼인 네이버쇼핑이나 쿠팡에 가품이 넘쳐나는 것은 심각한 문제이긴 하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오픈마켓이 물건을 직매입해서 100% 검수하지 않는 이상 온라인 짝퉁 판매 문제는 계속될 텐데 100% 검수는 인력과 비용 구조상 불가능하다"라고 말했다.
/구서윤 기자(yuni2514@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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