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증권가 리포트, 매도 의견 없어도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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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뉴스24 고정삼 기자] 영화 '빅쇼트(The Big Short)'는 2000년대 중반 과열된 미국 주택시장이 붕괴할 것이란 예측을 토대로 공매도를 실시해 막대한 수익을 올린 투자자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이들은 주택 가격 하락에 베팅하기 위해 주택저당증권(MBS)의 신용부도 위험을 교환하는 신용부도스와프(CDS), 부채담보부증권(CDO) 등의 파생상품을 활용했다.

그런데 MBS의 기초자산인 주택담보대출 연체율이 증가하는데도, 채권 등급은 하향 조정되지 않는다. 공매도를 실행한 헤지펀드 매니저 마크 바움은 국제 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를 찾아가 이유를 따져 묻는다. S&P는 마지못해 채권의 최고 등급인 'AAA'를 부여하지 않으면, 고객(은행)이 경쟁사인 무디스로 넘어가게 된다고 말한다.

이 장면은 '매수' 의견 일색인 국내 증권사들의 기업 분석 리포트를 연상케 한다. 본사 법인·국제영업에 동원되는 애널리스트들도 자신이 커버하는 기업과의 이해관계를 고려해 사실상 '매도' 의견을 제시하지 못한다. 행여 '매도' 의견 리포트를 냈다간 내부와 외부, 양쪽에서 민원에 시달리게 될 수 있다.

상장사 입장에서도 회사에 부정적 의견을 피력하는 애널리스트를 달가워할 리 없다. 애널리스트가 기업의 심기를 자칫 잘못 건드릴 경우 자료 제공과 기업 탐방이 제한된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기관투자자들도 대량으로 보유하고 있는 종목에 대해 부정적 의견을 제시하는 애널리스트를 좋게 평가하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있다. 애널리스트들이 커버 종목에 대해 매수 의견을 제시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하지만 단순히 매도 의견이 없다는 이유로 리포트의 신뢰도를 문제 삼는 건 소모적이란 생각이 든다. 오히려 리포트의 신뢰도를 떨어뜨리는 것은 기업 분석에 관한 합리적 근거나 구체적 수치가 제시되지 않은 경우일 것이다.

애널리스트는 리포트를 작성하기 위해 기업을 탐방하고, 전반적인 영업 활동을 점검한다. 실적뿐 아니라 신제품과 투자 계획 등을 파악하고, 이를 토대로 리포트를 작성한다. 그럼에도 몇몇 리포트에서는 구체적인 근거 없이 앞으로 산업이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는 경우가 종종 목격된다.

이 같은 사례들이 반복되는 것이 매도 의견이 없는 리포트보다 더 증권업계의 신뢰도를 떨어뜨릴 수 있다. 투자자들도 리포트에서 투자의견에 집착하기보다 애널리스트의 논리와 근거를 살필 필요가 있다. 단순히 매수·매도 의견에 따라 종목을 사고판다면 자신이 하고 있는 게 투자인지 투기일지 다시 생각해볼 문제다.

지난 2020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이후 시장에 풀린 풍부한 유동성에 힘입어 우리는 삼천피·천스닥 등 전례 없는 상승장을 경험했다. 이 기간 동안 동학개미라 일컬어지는 개인투자자의 수도 급격히 증가했다.

최근에는 각종 매크로(거시경제) 악재로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지수가 과거 수준으로 회귀하는 하락장을 경험 중이다. 이제는 개인투자자들도 한층 성숙한 태도로 투자에 임해야 한다. 어쩌면 시장은 긴 겨울을 앞두고 있을지도 모른다.

/고정삼 기자(jsk@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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