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장유미 기자] 이명희 회장 아래 남매 경영 체제로 운영되고 있는 신세계그룹이 지난해 말 정기임원 인사를 통해 '세대교체'의 신호탄을 쐈다. 이마트는 50대 초반의 젊은 컨설턴트 출신인 강희석 사장, 신세계는 패션·화장품을 앞세워 신세계인터내셔날의 부흥을 이끈 차정호 사장을 새롭게 수장으로 선임했고, 각 사별로 조직도 대폭 개편했다.
11일 업계에 따르면 고(故)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의 막내딸로 태어난 이명희 회장은 신세계백화점 영업담당 이사로 경영일선에 나섰다. 그러나 신세계그룹이 삼성그룹에서 분리된 후부터 경영 실무를 전문경영인에게 맡기면서 책임 경영 체제를 강화했다.
이에 이마트와 신세계를 맡은 각 수장들은 오너일가를 제외한 이들 중 그룹 내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실권자로 평가 받는다. 일각에선 정 부회장이 이끄는 이마트가 신세계그룹의 주요 사업을 이끌고 있어 좀 더 힘이 실린다는 평가지만, 신세계 측은 각 대표들이 이끄는 '투톱 체제'로 운영되는 만큼 누구 한 명을 그룹 2인자로 꼽기엔 애매하다는 반응이다.
신세계그룹에서 오너일가를 제외한 임원 중 가장 높은 직급은 사장이다. 그 동안 신세계그룹에서 부회장 타이틀을 거머쥔 이는 구학서 전 부회장과 김해성 전 부회장이다. 구 전 부회장은 2014년, 김 전 부회장은 2016년에 퇴임했다.
특히 구 전 부회장은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의 '경영 후견인' 역할을 해 오며 부회장직 퇴임 후에도 고문직을 수행하며 오너일가를 도왔다. 또 1997년 당시 1조5천억 원 수준이던 신세계그룹 매출을 15년 만에 20조 원대 기업으로 성장시킨 인물로, 그룹 2인자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했다. 김 전 부회장은 '포스트 구학서'로 주목 받았지만 1년 만에 돌연 퇴임해 아쉬움을 남겼다.
이에 신세계그룹에서 부회장 직함을 갖고 있는 이는 오너일가인 정용진 부회장이 유일하다. 정 부회장은 이마트를 주축으로 사업 영역을 넓히고 있으며, 동생인 정유경 신세계백화점 총괄사장은 백화점과 면세점 사업을 앞세워 경영 활동에 매진하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70대인 이명희 회장은 여전히 경영일선을 지키면서 정 부회장과 정 총괄사장의 경영 능력을 계속 검증하고 있다"며 "아직까지 후계구도가 명확하지 않은 신세계그룹 분위기상 남매 경영을 뒷받침 해주는 이마트, 신세계 각 대표들의 역할이 지금 상황에선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신세계그룹 관계자는 "신세계는 백화점과 이마트를 두 축으로 그룹의 여러 계열사들이 포진해 있는 만큼 각 수장들이 그룹의 미래 성장을 책임지는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고 볼 수 있다"며 "작년 말 정기 인사를 통해 새 수장이 선임된 만큼 내부에선 성장에 대한 기대감이 높다"고 밝혔다.
◆첫 외부 출신 강희석…"경영 능력 입증 과제"
이마트를 이끌고 있는 강희석 사장은 첫 외부 출신 대표로, 컨설팅 업체 '베인앤컴퍼니'에서 소비재 유통부문 파트너로 일하다 정 부회장과의 인연으로 합류했다. 강 사장을 이마트 대표로 선임한 것은 정 부회장이 결정하고, 이명희 회장이 승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강 사장은 10여 년간 이마트의 경영 컨설팅 자문을 맡으며 이마트와 교류해 왔던 인물로, 아마존·알리바바 등 글로벌 트렌드를 주로 연구했다. 이로 인해 신세계그룹 측은 강 사장이 이마트의 미래를 구상하고 만들어갈 적임자라고 판단해 적극 영입했다.
이 같은 기대에 부응하듯 강 사장은 지난해 말 합류한 후 이마트의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특히 지난해 2분기에 사상 첫 분기 적자를 기록한 이마트의 체질이 상당히 약화됐다고 판단해 사업성과 수익성을 중심으로 한 사업 구조조정에 과감히 나서 눈길을 끌고 있다.
이의 일환으로 강 사장은 이마트 잡화점 브랜드인 '삐에로쑈핑'부터 손을 댔다. 지난 2018년 첫 문을 연 '삐에로쑈핑'은 일본 대형 유통업체인 '돈키호테'를 벤치마킹한 것으로 주목 받았으나, 고객의 흥미에만 치우친 나머지 상품 경쟁력이 떨어져 매출 확대로 이어지진 못했다. 이마트에선 1년간 준비해 신성장동력으로 키우려고 했으나 효율이 떨어지며 골칫덩이로 전락했고, 결국 강 사장은 운영되던 7개 점포 영업을 모두 중단할 것을 지시했다.
이후 강 사장은 헬스앤뷰티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지 못한 '부츠' 사업도 접기로 결정했다. '부츠'는 이마트가 2017년 영국 월그린 부츠 얼라이언스와 손잡고 들여온 전문점으로, 한 때 매장을 33개까지 운영했다. 하지만 사업 성과가 나지 않으면서 적자 규모를 키우는 주범이 됐고, 결국 지난 5일 김포 트레이더스점과 이마트 자양점을 끝으로 모든 매장이 자취를 감췄다. 온라인 쇼핑몰인 SSG닷컴에서 운영 중이던 '부츠몰' 역시 지난달 22일자로 운영이 끝났다.
신세계그룹 관계자는 "지금이야말로 전문점 수익성 제고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판단해 일부 전문점의 영업을 종료했다"며 "점포별로도 효율이 낮은 곳은 점차 폐점해 나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전문점 사업은 이마트의 신성장동력 중 하나로, 수익성 중심으로 과감히 재편하고 있다"며 "앞으로도 비효율 브랜드와 일부 점포를 정리해 기존점을 업그레이드하고, 성장성이 높은 전문점을 투자하기 위한 재원을 확보하기 위해 더 노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강 사장은 부실한 전문점을 정리하는 대신 핵심 영업인 '기존점 경쟁력 강화'를 이마트의 성장 모멘텀으로 삼고 투자 확대에 적극 나서고 있다. 특히 '그로서리 매장' 강화를 중심으로 기존 이마트를 리뉴얼 해 나가는 데 주력하고 있다.
리뉴얼의 핵심 키워드를 '고객 관점 이마트로의 재탄생'으로 잡은 강 사장은 기존 점포의 30% 이상을 새롭게 구성하도록 지시했다. 또 고객 지향적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하고 고객이 오랫동안 체류하고 싶은 매장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판단해 '축·수산 맞춤형 손질 서비스' 매장을 선보이는 등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더불어 강 사장은 사업성이 높은 전문점의 상품 및 브랜드의 해외 수출에도 적극 나설 방침이다. 이에 지난 2015년 베트남 등 4개국에 첫 상품 수출을 시작한 '노브랜드'를 앞세워 수출액을 늘려나갈 계획이다. '노브랜드'는 지난 2018년 기준으로 20여 개 국에서 70억 원의 수출 성과를 올린 바 있다. 또 화장품 전문점인 '센텐스'의 해외 진출도 적극 추진할 예정이다.
업계 관계자는 "강 사장이 오너일가를 제외한 신세계그룹의 2인자로 올라서기 위해선 이마트의 떨어진 수익성을 끌어올리는 것이 급선무"라며 "올해 투자 계획에서 오프라인 경쟁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2천600억 원을 투입, 신선식품 부문을 강화하기로 한 것도 이의 일환"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 동안 컨설턴트로 활동하며 이마트의 경영 자문을 맡았지만 본인이 실제 기업을 이끄는 것은 이번이 처음인 만큼 자신의 경영 능력을 이번에 입증할 수 있을지가 큰 고민일 것"이라며 "첫 외부 출신 대표라는 장벽을 넘어 내부 조직을 얼마나 장악하느냐도 강 사장의 경영 능력 잣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신세계인터 성장 이끈 차정호, PB 강화로 경쟁력 높일 듯
정유경 총괄사장에게 발탁돼 신세계그룹에 합류한 차정호 신세계 사장은 백화점 사업을 맡은 지 1년이 채 안됐지만 벌써부터 업계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다. 면세점에서 쌓은 글로벌 감각을 바탕으로 2017년 신세계인터내셔날에 합류한 후 눈에 띄는 실적 증가세를 이끌었던 이력이 있어서다.
실제로 신세계인터내셔날의 지난해 매출은 차 사장이 대표를 맡기 전인 2016년보다 39.6%, 영업이익은 212.5%나 늘었다. 또 차 사장이 합류한 2017년에 신세계인터내셔날 화장품 부문은 처음으로 흑자 전환했다.
여기에 차 사장은 신세계인터내셔날의 패션 부문과 라이프스타일 부문을 해외로 진출하는 데 상당한 공을 들였다. 해외 시장 개척을 통해 신세계인터내셔날의 신성장동력을 확보하려는 의도였다.
이에 지난해 6월에는 베트남 호찌민에 라이프스타일 브랜드인 '자주'의 첫 해외 매장을 열었고, 같은 해 1곳을 추가 오픈했다. 또 지난 2018년 3월 중국 현지에 법인을 설립한 후 패션 브랜드인 '스튜디오톰보이'를 직진출시켜 성과를 얻었다.
신세계그룹 관계자는 "차 사장은 신세계인터내셔날의 역대 최고 실적을 이끌며 능력을 이미 검증 받았다"며 "역동적인 신규사업 추진 능력을 바탕으로 새로운 시각으로 신세계백화점의 미래 먹거리를 발굴하는 데 적임자라는 평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그룹의 관심과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는 차 사장은 지난해 말 신세계 대표로 자리를 옮긴 후 미래 성장 동력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차 사장은 ▲국내 소비환경 변화에 따른 선제적 대응 ▲데이터에 근거한 고객 중심 사고 ▲내실 있는 비즈니스 모델 ▲국내로 국한되지 않는 글로벌 유통 환경 조성이라는 대전제 아래 올 한 해 백화점 사업을 이끌겠다는 계획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의 일환으로 차 사장은 지난해 8월부터 진행된 영등포점 리뉴얼을 올 상반기 내 마무리 짓고 서남부 상권 랜드마크 백화점으로 키울 계획이다. 또 5년 만의 신세계백화점 신규 점포가 될 '대전 사이언스콤플렉스'도 오는 2021년 하반기에 오픈시켜 중부권 거점 점포가 될 수 있도록 아낌없이 투자할 예정이다.
더불어 신세계의 신성장동력으로 자리잡은 화장품 편집숍 '시코르' 사업 확장에도 박차를 가한다. 현재 30개 점에서 운영되고 있는 '시코르'는 연내 10개 점포를 추가할 계획이다.
이 외에도 업계는 차 사장이 신세계인터내셔날에서 패션과 화장품 부문을 키운 만큼 신세계에서도 자체브랜드(PB)를 통한 신성장동력 확보에 주력할 것으로 전망했다. 신세계에서 현재 전개하고 있는 PB는 '시코르' 외에 '분더샵', '델라라나', '엘라코닉' 등으로 다양하게 구성됐다.
업계 관계자는 "신세계가 그 동안 경쟁사와 비교해 명품 분야에서도 앞서가고 있는 만큼 차 사장 역시 전문관 등을 통해 '명품' 강화에 더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며 "그 동안의 사업 성과를 통해 입증된 경영 능력을 바탕으로 신세계백화점에 미래 먹거리를 얼마나 잘 발굴할 수 있을 지가 관건"이라고 밝혔다.
이어 "'코로나19' 여파로 1분기 동안 백화점 매출이 큰 타격을 받은 만큼 차 사장이 이를 연내 얼마나 빠르게 회복시킬 수 있을지도 주목되는 부분"이라며 "강 사장보다 경영 능력이 입증돼 있다는 점에선 우위에 있다고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장유미 기자 sweet@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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