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장유미 기자] 경기 불황과 소비 침체, 업체 간 출혈경쟁, 원가 부담 가중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유통업계가 정기 인사철을 맞아 불안에 떨고 있다. 특히 이마트가 분기 첫 적자를 기록한 후 최근 '성과주의'를 앞세워 사상 처음으로 새 대표를 외부 수혈하고 고강도 인사에 나서자, 롯데·CJ 등 다른 유통 대기업들도 뒤숭숭한 분위기가 감돌고 있다. 각 업체의 최고경영자(CEO)들 역시 실적 부진에 따른 책임 인사가 잇따를 것으로 보고 상황을 예의주시하며 긴장하는 모양새다.
29일 재계에 따르면 신세계그룹은 매년 12월 1일부로 인사를 내던 전통을 깨고 적자를 기록한 이마트만 시기를 앞당겨 이달 말 인사를 단행했다. 이날 이갑수 이마트 전 사장을 포함해 회사 임원 40명 중 11명이 교체돼 재계에선 '파격 인사'란 평가를 내놓기도 했다. 특히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이 이마트의 첫 외부 수장인 강희석 대표를 끌어들인 것도 이례적이었다.
정 부회장이 임원 인사를 발표하며 던진 메시지는 '성과주의'와 '능력주의'였다.
정 부회장이 직접 추진한 전문점, 편의점, 호텔, 온라인 사업이 이마트 실적에 영향을 주며 사상 첫 적자를 기록하는 요인이 된 것으로 평가됐다. 하지만 가장 큰 원인은 할인점의 부진이었다. 기존점이 4.6% 역신장하면서 할인점에서만 43억 원의 영업손실이 발생했다. 이로 인해 정 부회장은 6년간 자리를 지켜왔던 이갑수 사장 대신 유통 컨설팅 및 분석 전문가인 강희석 대표를 새로운 이마트의 수장으로 선임했다.
이마트의 이 같은 움직임에 신세계그룹 전략에도 변화가 생겼다. 전략실의 경영관리 총괄과 지원 총괄 담당자는 각각 허병훈 부사장과 이주희 부사장으로 새롭게 교체됐다. 허 부사장은 삼성그룹 구조조정본부를 거쳤고, 이 부사장은 내부에서 '재무·기획통'으로 유명하다.
이에 12월 초 인사를 앞둔 신세계도 긴장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대폭 물갈이 한 이마트 인사의 영향이 백화점을 비롯한 신세계인터내셔날, 신세계면세점 등의 인사에도 어느 정도 미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다만 2012년부터 백화점을 이끌어 온 장재영 대표는 올 초 재선임됐던 데다, 상대적으로 이마트보다 호실적을 기록해왔던 만큼 이번에 교체되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또 올해 말 인천공항 입찰도 앞두고 있는 신세계디에프도 대표 교체 없이 손영식 대표를 중심으로 만반의 준비에 나설 것으로 관측된다.
하지만 신세계인터내셔날이 문제다. 코스메틱부문 이길한 대표가 HDC신라면세점 대표로 재직할 당시 명품시계를 밀반입한 혐의로 검찰에 불기소의견으로 송치됐기 때문이다. 일단 회사 측은 아직 혐의가 확정되지 않아 거취를 논하기 힘들다는 입장이다.
업계 관계자는 "장 사장이 지난해에도 교체설이 무성했지만 올해 대표로 재선임된 것은 이명희 신세계그룹 회장의 신뢰가 두텁다는 증거"라며 "신세계는 신사업을 안정적으로 펼치며 흑자경영을 이어가고 있는 만큼, 이마트보단 전면적인 인사·조직 개편이 이뤄지진 않을 듯 하다"고 말했다.
이마트가 철저한 '성과주의'를 바탕으로 인사를 단행하자, 재계는 실적 부진을 겪고 있는 롯데그룹 역시 대규모 인사를 단행할 것으로 전망했다. 롯데그룹은 매년 12월 말쯤 임원 인사를 진행했으나, 올해는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에 대한 리스크가 해소되면서 분위기 전환 차원에서 시기를 12월 중순쯤으로 좀 더 앞당길 가능성이 높아졌다. 또 신 회장이 지난해 10월 출소 후 연말 인사에서 '안정'보다 '쇄신'을 택했던 만큼, 올해도 실적 책임을 물어 큰 폭의 인사가 단행될 것으로 전망된다.
재계 관계자는 "신 회장이 그 동안 경영권 분쟁과 재판 등으로 자신만의 색깔을 온전히 드러낸 인사를 진행시키진 못했다"며 "대대적인 물갈이 인사를 통해 본격적인 세대교체가 이뤄질 것으로 전망된다"고 밝혔다.
일단 재계에선 올해 유통 계열사의 실적이 저조했던 만큼, 롯데 유통 BU장과 계열사 대표들이 대거 교체될 것으로 관측됐다. 현재 롯데는 내수 부진, 일본 제품 불매운동 여파 등으로 직격탄을 맞으며 롯데하이마트와 롯데마트·슈퍼 등 대부분의 계열사들이 부진한 실적을 기록하고 있다.
특히 유통 BU 최고 책임자인 이원준 부회장의 교체 가능성이 가장 높은 것으로 거론되고 있다. 이 부회장은 올해 취임 3년째로, 내년 3월에 임기가 끝난다. 이 부회장의 교체에 따라 유통 계열사 수장들의 연쇄이동은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가전양판점인 롯데하이마트를 이끌고 있는 이동우 사장 역시 계속된 실적 악화로 인해 교체 가능성이 크게 점쳐진다. 재작년 '갑질논란'에도 신 회장의 두터운 신임 덕에 2021년까지 공식 임기가 연장된 상황이지만, 2년 연속 실적 부진이 이어지고 있는 만큼 대표 자리를 이어갈 명분이 점차 없어지고 있다. 실제로 롯데하이마트의 올해 상반기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35.2% 감소한 701억 원을 기록했고, 작년 3분기와 4분기 영업이익도 각각 전년 대비 20%, 53.5% 줄었다. 증권가에서는 3분기에도 영업이익이 21.4% 줄어들 것으로 전망했다.
여기에 최근 위안부 할머니를 조롱하는 내용의 광고로 논란을 일으킨 '유니클로'에 대한 책임을 물어 배우진 에프알엘코리아 대표의 자리도 위태하다. 또 불매운동 여파로 매출이 크게 떨어진 것도 어느정도 영향을 끼칠 것으로 전망된다.
재계 관계자는 "신 회장은 이번 임원인사에서 젊은 CEO들과 여성 임원들을 대거 발탁해 '뉴 롯데'를 위한 발판 마련에도 더욱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며 "세대교체가 이뤄질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60세를 전후한 계열사 대표들이 이번에도 자리를 보전할 수 있을 지 관심이 크다"고 말했다.
CJ그룹 역시 최근 CJ제일제당이 '비상 경영 체제'를 시행하는 등 핵심 계열사의 수익성이 악화됨에 따라 실적이 부진한 임원들의 교체 가능성이 대두되고 있다. 지난해에는 '삼성맨'이었던 박근희 부회장의 합류로 해외 사업 확대에 대한 의지를 드러냈지만, 올해는 실적 부진, 계열사 내 여러 이슈로 이전과 달리 인사를 서두르지 않는 분위기다.
CJ그룹은 일단 매년 10월 말쯤 진행하던 인사 시기도 11월 초쯤으로 늦춘 것으로 알려졌다. 재계에선 CJ그룹의 인사가 다음달 19일 예정인 경영회의에 앞서 진행될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이는 최근 이재현 CJ그룹 회장 장남인 이선호 씨의 마약 혐의 문제로 내부 분위기가 어수선해진 탓이 컸던 것으로 풀이된다. 또 임원으로 승진이 기대됐던 이선호 씨의 거취 문제가 확실치 않은 상황인 데다, 장남 문제에 따른 장녀 이경후 상무와 남편 정종환 상무의 그룹 내 역할 분담 문제도 이번 인사의 고민거리다.
재계 관계자는 "CJ제일제당의 실적 부진과 CJ ENM의 오디션 프로그램 투표 조작 논란, CJ CGV 터키 리라화 폭락에 따른 실적 부진, 장남 문제 등으로 그룹 내부 분위기가 가라앉은 상태"라며 "이번 인사에서 세대 교체 및 경영 승계 구도에 어떤 변화가 있을지 기대된다"고 밝혔다.
장유미 기자 sweet@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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