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인혜] 20년째 선거판 떠돈 카드수수료 조정 공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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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가 끝나고 난 뒤' 대안 없는 말잔치…선거판 '올드공약' 바꿔야

[아이뉴스24 허인혜 기자] "작년에 왔던 각설이, 죽지도 않고 또 왔네…."

지난주 6.13 전국동시지방선거의 금융공약 기사를 작성하며 속으로 맴돈 멜로디다. 금융을 취재하며 못이 박히도록 들었던 카드수수료 인하가 정책 공약집에 귀신같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정치적 입장은 다른데 카드수수료는 하나같이 내리겠단다.

카드수수료 인하 공약의 역사를 좇아가다 보면 근 20년간의 현대사를 아우를 만큼 길고 지난하다.

카드수수료 조정은 주요 당의 당명이 '민주당'과 '한나라당'이던 2002년 제3회 지방선거에서도 등장할 만큼 해묵은 약속이다. 2007년 대통령선거를 겨냥해서는 정동영 후보, 이명박 후보, 이회창 후보가 신용카드 수수료 인하를 각각 공약으로 걸었다. 2010년 제5회 지방선거와 2014년 제6회 지방선거, 2012년 대통령선거와 지난해 치러진 대통령 선거에서도 카드수수료 공약은 약방의 감초였다.

그동안 카드수수료율이 개선되지 않아 같은 공약이 반복되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카드수수료는 지난 10년간 모두 7차례 내렸다. 1990년대 초 5% 수준이었던 카드수수료는 최근 2%대 수준으로 절반 이상이 깎였다. 정치권이 초점을 맞춘 영세가맹점(연 매출 3억원 이하)은 0.8%를 카드수수료로 낸다.

카드업계 관계자는 "소상공인을 생각한다면 가장 먼저 손대야 하는 게 임대료, 그다음이 대기업 독식"이라며 "카드수수료는 그에 비하면 새 발의 피다. 건물주의 갑질이나 골목까지 침투한 대기업 탓에 문을 닫는 소상공인이 많지, 카드수수료 부담에 폐업하는 가게가 흔한가"라고 하소연했다.

20년 동안 카드수수료 인하가 입방아에 오르다 보니 카드수수료 인하 공약이 지겹다는 목소리가 10년, 15년 전에도 눈에 띈다. 당시 기사에서 카드수수료 인하 공약은 '재미 좀 보니 반복' '정치권 논리에 함몰된 카드수수료' 등으로 묘사됐다. 초반 몇 차례의 인하 요구는 정당했더라도 이후에는 습관적이고 반복적이라는 이야기다.

각 당의 공약집을 살펴보면 경제 공약에서 카드수수료처럼 명확한 수치를 언급한 정책은 드물다.

더불어민주당은 영세 소상공인의 범위를 현행 3억원에서 5억원으로, 중소 가맹점은 5억원에서 10억원으로 넓히는 안을 제시했다. 자유한국당은 이번 지방선거 공약집에서 3억원 이하인 영세 가맹점 수수료를 0.8%에서 0.5%로, 3억원 이상 5억원 이하의 중소 가맹점은 현행 1.3%에서 1.0%로 조정할 계획을 밝혔다. 정의당은 카드수수료 1% 상한제를 언급했다.

이처럼 카드수수료 인하 공약은 숫자를 드러내기 좋고 대상이 명확하며, 당장의 가계 수익에 직결되는 결과 값을 내준다. 후보자들이 선거철마다 한 바퀴씩 돌며 어묵이며 개불을 얻어먹는 재래시장에서 호응을 얻기에도 탁월한 카드다. 정치권이 카드수수료 인하 공약을 사랑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서민들의 가계 구조를 면밀히 들여다보고 카드수수료 인하가 필요하다면 낮출 수 있다. 다만 이제는 20년간 밟아온 액셀러레이터에서 잠시 발을 떼고 인하와 대안을 저울질할 때다. 더 이상의 대책 없는 인하는 업계 축소로 이어져 지속가능성도 현저히 낮아진다.

이미 카드업계 경색과 카드수수료, 카드론 축소가 맞물리면서 카드사들의 순익 축소도 가시화됐다. 전업계 카드사의 지난해 당기순이익은 1조2천268억원으로 전년대비 32.3% 줄었다. 카드수수료 인하 압박이 이어지면서 카드사의 일자리는 2011년 말 2만9천408명에서 2016년 말 2만1천982명으로 5년 사이 25.3% 급감했다. 특히 정규직 일자리는 5.8% 감소한 데 반해 비정규직은 11.3%나 업계를 떠났다.

보다 못한 금융노조가 먼저 대기업과 소상공인의 수수료를 차등 적용하는 방안을 요구했지만 도입은 미지수다. 카드업계와 소상공인, 대기업이 만나 이견을 조율하고 금융당국이 살펴 현장에 적용되기까지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한데, 국회가 이 과정을 거치느니 손쉬운 카드수수료 전체 인하를 택하지 않겠느냐는 불안감이 업계를 장악하고 있다. 대기업과 소상공인, 재래시장의 카드수수료 상생 방안 역시 10년째 불려 나왔지만 약발이 다하면 무대 뒤로 들어가기를 반복했다.

용의 밑그림만 그려서는 승천할 수 없듯 공약도 화룡점정이 필요하다. 유권자들의 표심을 흔드는 돈 문제는 특히 그렇다. '피닉제' 이인제도 이번 지방선거에서는 자리를 내줬다. 선거판 올드보이들은 바뀌는데, '올드공약'은 언제쯤 세대교체가 이뤄질까.

허인혜기자 freesia@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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