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딥시크와 낭중지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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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뉴스24 이균성 기자] 낭중지추(囊中之錐). ‘주머니 속 송곳’이라는 뜻이다. 중국 전국시대 조나라 때 모수(毛遂)라는 사람의 일화에서 비롯된 고사성어다. 재능이 뛰어난 사람은 숨어 있어도 저절로 알려진다는 의미다. 미국의 중국 견제를 보면 이 고사성어가 떠오른다. 미국이 주머니로 여겨지고 중국이 송곳으로 보이는 것이다. 미국이 중국의 기술을 견제하면 할수록 중국은 오히려 주머니 속 송곳처럼 더 뾰족해진다.

중국의 첨단 기술력이 국가적 지원으로 일취월장하고 있다는 사실은 곳곳에서 입증되고 있다. 중국 한 스타트업이 개발했다는 인공지능 딥시크(DeepSeek)는 그야말로 낭중지추의 대표적인 사례다. 딥시크가 성능테스트에서 오픈AI의 챗GPT를 능가했다는 소식은 미국 주식시장을 초토화했다. AI 반도체 대장주인 엔비디아의 주가가 하루 새 17% 폭락했다. 시가총액이 무려 800조원이나 사라졌다.

중국 AI 스타트업 딥시크 로고
중국 AI 스타트업 딥시크 로고

미국의 중국 견제는 주로 첨단 기술 분야에서 진행되고 있다. 반도체와 전기차 및 배터리 분야가 핵심이다. 반도체는 특히 AI와 직결돼 있다. AI가 국가 안보까지 좌우할 미래 핵심 기술로 여겨지고 있고, 이를 위해서는 고성능 AI 반도체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미국이 한국 일본 대만 네덜란드 등 주요 동맹국과 힘을 합쳐 중국에 대한 반도체 수출을 엄격하게 통제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겠다.

딥시크는 이런 엄혹한 환경에서 태어났다. 미국 정부와 빅테크 기업이 인공지능을 고도화하기 위해 엔비디아의 값비싼 반도체를 경쟁적으로 구매할 때 중국은 수출 통제에서 제외된 저렴한 반도체로 챗GPT를 능가하는 딥시크를 개발했다. 미국 기업이 수천억원에서 수조원을 쏟아부을 때 중국 스타트업은 단지 수십억원을 들여 개발한 것이다. AI 개발에 관한 미국식 게임의 법칙까지 위태해졌다.

이 사건은 ‘인공지능의 스푸트니크 순간’으로 불릴 정도다. 옛 소련이 1957년 10월에 스푸트니크 1호를 쏘아 올렸을 때 미국은 엄청난 충격에 빠졌다. 우주 경쟁에서 소련에 뒤졌다는 공포감 때문이다. AI로 세계 지배력을 더 공고히 할 수 있다고 믿었던 미국으로서는 모든 것을처음부터 다시 생각해야 할 상황에 빠졌다. 지금과 같은 미국식의 고비용 개발 방식에 의문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몇몇 의혹도 있기는 하다. 발표보다 실제로는 돈을 더 썼을 것이고, 반도체도 더 고가의 제품을 우회적으로 들여와 사용했을 것이며, 데이터도 훔쳐 갔을 것이라는 지적들이 있다. 또 중국 정부의 검열을 벗어나지 못해 답이 제한적이라는 비판도 있다. 하지만 그 어떤 비판도 중국의 AI 기술력을 얕잡아 볼 수 없고, 중국 AI 기술력은 앞으로 지금보다 더 발전할 것이라는 전망을 무시할 수 없다.

때리면 때릴수록 더 커지는 형국이다. 반도체와 AI 분야만 그런 게 아니다. 기후 위기 탓에 대세가 될 것을 의심할 수 없는 전기차와 배터리 분야도 마찬가지다. 이 시장이 얼마 동안 캐즘(chasm. 기술 발전과 시장 형성의 불일치) 현상을 보이고 있지만 중국 기업들에게는 오히려 그게 기회인 듯하다. 중국이 자동차 수출국 1위에 올랐고, 세계 1위인 배터리 점유율도 계속해서 늘려나가고 있다.

미국 바이든 정부가 이를 만회하기 위해 자국 내에 배터리 공장을 짓는 기업에 각종 특혜를 주는 시책을 펼쳤지만 역부족인 듯하다. 오히려 트럼프가 재선에 성공하면서 바이든 정부 정책을 이리저리 바꾸려는 바람에 이미 미국에 투자한 기업들만 골머리를 앓게 됐다. 전기차 배터리보다 화석 연료 자동차를 강조하는 트럼프 정책이 계속된다면 그 격차가 더 벌어질 것은 불을 보듯이 뻔하다.

미국이 중국을 통제하는 것은 그럴 수 있다. 중국 기업이 국가 지원을 통해 지금처럼 가성비 좋은 제품으로 세계 시장을 공략한다면 미국 입지가 약해질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관세든 수출 통제든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하는 게 미국 정부로서는 불가피할 것이다. 하지만 시장은 시장이다. 시장에서는 더 질 좋은 제품을 더 싸게 공급하는 기업을 당해낼 재간이 없다. 그런 기업이 낭중지추다.

문제는 우리 정부와 우리 기업이다. 두 다리와 두 손으로 싸울 수도 있는데 한쪽 다리와 손을 묶어놓고 싸워야만 하는 형국이다. 물론 미국의 강압 때문이다. 기업의 경우 경제와 시장 논리를 우선하는 게 당연하지만 정치 논리에 밀려 체력이 낭비되고 있다. 미국 기업처럼 중국 기업도 경쟁자이면서 협력자로 여겨야 마땅한데 상종하면 안 되는 적(敵)으로 삼고 외통수 싸움만 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균성 기자(sereno@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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