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유범열 기자]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와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22일 경제 불확실성 해소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만났다. 이 자리에서 두 사람은 추가경정예산안(추경) 추진 문제를 두고 의견을 나눴으나, 시각 차를 좁히지는 못한 것으로 보인다.
박수민 국민의힘 원내대변인은 이날 오후 서울 중구 한은 본관에서 열린 권 원내대표와 이 총재의 비공개 회동 후 기자들과 만나 "이 총재가 '예산 조기 집행이 민생과 경제를 위해 중요하고, 집중해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고 밝혔다. 그는 다만 "(이 총재가) 올해 하반기, 연말까지 봤을 때 추경 필요성이 있다고 언급했다"며 "저희(당) 입장과 크게 다른 것인지 모르겠다. 저희 생각엔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고 해석했다.
박 원내대변인은 이날 이 총재가 추경 추진 시기를 구체적으로 언급했는지 묻는 말에 "'추경을 가급적 빨리 해야 한다'는 이 총재의 지난주 발언은, 재정을 집행하는 데 시간이 걸린다는 것을 언급하는 차원으로 당은 이해했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당은) 일단은 예산 조기집행에 집중하는 것이 민생과 경제에 좋다고 갈음드리겠다"고 덧붙였다.
박 원내대변인이 추경을 둘러싼 당과 이 총재와의 간극을 좁히려 노력했지만, 결국 당이 마지막까지 '올해 예산 조기집행'에 방점을 찍은 것을 보면 비공개 회동에서도 양측 간 시각 차는 여전했을 것이란 분석이다.
이 총재는 정부 내 대표적인 '추경론자'로 꼽힌다. 그는 지난 16일 한은 금융통화위원회 통화정책방향 회의에서 기준금리 동결을 결정한 뒤 기자들과 만나 15~20조원 규모의 추경이 필요하다고 공식적으로 밝혔다. 그는 "한은 입장에서는 지금 추경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시기는 가급적 빨랐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통화정책(금리 조정)만 가지고 경기를 부양해야 한다거나, 통화정책에 모든 부담을 넘기는 것은 바람직 하지 않다"며 "추경이 늦어져 성장률 전망치가 떨어지면 심리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우려했다. 경기 부양책 시급한 상황이지만, 트럼프 신행정부 출범 등에 따른 환율 불확실성 가중을 우려해 금리를 하향 조정하기는 힘든 만큼 국회가 추경을 통해 경기 부양을 유도해달라는 뜻으로 풀이된다.예신
그러나 국민의힘은 이러한 주장에 선을 긋고 있다. 전날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겸 경제부총리 역시 "국정협의회가 가동되면 추경 논의를 시작할 수 있다"며 추경 가능성을 공개적으로 열어뒀으나, 당내에서는 반대 목소리가 이어졌다.
송언석 국회 기획재정위원장은 이날 입장문을 내고 "최 권한대행의 추경 시사 발언은 지역화폐(지역사랑상품권) 확대를 고집하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정치적 압력에 굴복한 결과가 아닌지 심각히 우려된다"며, 이 총재를 향해서도 "중립성과 독립성을 상실하고 월권적 재정 확대를 계속 요구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불과 며칠 전에 정부가 재정의 63.6%에 달하는 358조원을 상반기에 신속히 집행하겠다고 했는데, 갑작스레 추경 발언이 나온 것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며 "추경을 편성하면 재정 건전성이 더욱 악화되고 대외 신인도 하락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의힘은 특히 민주당의 주요 정책인 '지역화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과 연결된 추경 논의에 부담을 느끼는 상황이다. 이 총재 역시 지난 16일 "지원금은 자영업자 등 어려운 계층에 집중 지원해야 한다"며, 전국민 지급 방식에는 부정적인 입장을 내비친 바 있다.
박 원내대변인도 이날 비공개 회동 분위기가 화기애애하지는 않았다고 전했다. 그는 "엄중한 분위기였다는 게 맞는 것 같다"며 "해외에서 (한국 경제를 보는 시각) 이런 것들이 엄중하게 교환되는 자리"라고 설명했다.
권 원내대표는 또 최근 경제 상황 전반에 대한 본인 생각을 가감없이 드러내고 있는 이 총재에게 이와 같은 행보를 보이는 배경도 물었다고 한다. 박 원내대변인은 이에 대해 "당은 한은의 독립성을 존중한다"면서도 "이 총재께서 더 적절히 판단하시리라 생각한다"고 여운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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